[ET컬럼]기술이 사라지는 엑스포

중국 상하이는 지금 엑스포가 한창이다. 지난 5월에 개막해 이달 말 폐막을 앞두고도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인다. 중국관을 비롯해 한국 · 사우디아라비아 · 일본관 등 인기 전시장은 아직도 최소 4시간에서 길게는 8시간이나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다. 인천공항에서 불과 2시간이면 상하이에 도착하지만 엑스포 한국관에 입장하려면 서너 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한다.

하루에 수 십만명씩, 무려 6000만명의 인파가 상하이 엑스포장을 찾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엑스포는 19세기 중반 런던 만국박람회를 시작으로, 선진국의 수도를 순회하며 새로운 기술과 문물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인류가 성취한 문명의 업적과 결과물을 자랑하는 성대한 축제다. 전화기 · 자동차 · 비행기 · 텔레비전 등 인류 역사에서 손꼽히는 발명품중 상당수가 엑스포를 통해 첫 선을 보였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다. 2010년 세계는 지금 모바일과 네트워크 시대다. 새로운 문물과 기술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굳이 한자리에 모일 이유가 없다. 안방에 앉아 TV와 인터넷만 있어도 제품이나 기술 정보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새로운 발명품 하나를 구경하려고 서너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지난 19세기 방식이다. 인류 역사를 한순간에 바꿀 새롭고 신기한 문물을 엑스포장에서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엑스포는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진다. 유럽 어느 귀족의 집에서 출발한 소규모 전시회는 오늘날 여의도의 3분의 1 규모인 상하이 엑스포에까지 이르게 됐다. 각 국가마다 전시관을 꾸미는 데 수백억원씩을 쏟아 붓고 섭씨 40도를 넘는 더운 날씨에도 엑스포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이런 19세기식 이벤트에 왜 세계적 이목이 집중되는지는 직접 가보면 안다.

한글 문양으로 디자인한 한국관에는 비보이(b-boy)와 민속국악, 북춤 등 전통공연이 펼쳐진다. 전시관에서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끈 콘텐츠는 단연 `코러스 시티(Chorus City)` 동영상이다. 한류 스타들이 직접 출연한 이 영상물은 우리가 함께 이뤄가는 `꿈`이 주제다.

누에고치를 형상화한 거대한 돔 모양의 일본관 역시 자연과 기술의 조화를 얘기한다. 멸종 위기에 처했던 따오기를 중국과 일본의 함께 극복한 사례가 뮤지컬로 펼쳐진다. 프랑스관도 요리를 만드는 주방 모습과 조각가 로댕, 화가 르누아르, 고호, 고갱의 오리지널 작품으로 방문객의 감성을 자극한다.

엑스포는 더 이상 인간이 만든 기술이나 문물을 구경하는 장소가 아니다. 이곳에서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추어져(embedded), 뒤에서 조용하게(calm) 움직인다.

“가장 성숙한 기술은 사라지는 기술(disappearing technology)”이라는 마크 와이저의 명언이 완벽하게 실현되는 순간이다.

상하이 엑스포장 어디서나 고개를 들면 보이는 붉은 역피라미드 모습의 중국관. 디지털 영상기술을 접목해 천년 전 사람들이 그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와 고색창연한 진시황 병마용을 보려고 사람들이 10시간 이상씩 기다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주상돈 경제과학담당 부국장 sd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