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동반성장 유감

CEO와 고위 공무원을 만날 때마다 ‘동반성장’이라는 말을 듣는다. 공식석상에서 매번 나오는 주제가 동반성장이다. 날이 추워지면서, 연초 각 기업들의 결산공고가 나오면서, 설날이 가까와지면서,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갑자기 정부 국정지표가 ‘동반성장’으로 변한 것일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한다는 좋은 의미지만 정작 동반성장 혜택을 나누면서 기뻐해야 할 기업은 별 반응이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성과를 나누고, 기술개발과 제품 구매 등에 서로 협조하며 전략적 협력을 통해 어려움을 타개한다는 그 좋은 의미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정부가 설을 앞두고 매일 동반성장 행사를 열고, 심지어 전직 총리로 구성한 동반성장위원회까지 나서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9988’ 중소기업이나 나머지 대기업 그리고 근로자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동반성장 원조는 상생(相生)이다. 가진 것과 가지지 않은 것을 구별하지 않고 서로 함께 살아간다는 뜻에 반대할 명분은 없다.

 하지만 상생이든, 동반성장이든지 공존이나 공생이던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순간 그 뜻이 달라지며, 당초 의미는 위태로워진다. 바로 정치적 목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실 동반성장을 하겠다는 것은 현재의 우리 경제 토대가 상생하지 않고, 동반성장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상생이 안 된다면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기 마련이다. 주적은 명확해진다. 대기업이다. 연간 9%의 수익을 남기는 대기업은 상생을 막는 원흉이 된다. 애플의 40%에 육박하는 수익률을 부러워하던 그 관료와 정치인들은 상생이 안 되는 주적으로 대기업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타이밍도 문제다. 레임덕 시기에,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나오는 정책은 그 진정성을 떠나서 의도를 의심받기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가 그러하듯이 노무현 정부, 김대중 정부 때도 레임덕이 오기 시작한 비슷한 시점에서 동반성장과 상생을 꺼내들었다. 학습효과는 무섭다.

 역대 정권 단골메뉴도 상생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내걸었다. 바로 국가정책에 상생이 처음 들어온 시점이다. 대통령이 직접 점검하겠다는 말도 되풀이한다. 심지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도 ‘남북한 상생협력’이라는 말이 활용된다.

 하지만 정부는 동반성장을 잘못 알았다. 정부를 동반성장의 감시자로 착각하는 우를 범했다.

 ‘동반성장’ 주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만이 아니다. 동반성장 1차 주체는 ‘예술’을 하는 정치가와 행정관료들이다. 동반성장을 하려면 정치인과 관료, 정부의 생각과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동반성장 주체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구분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찾아 마치 암행어사라도 된 듯 대기업 행태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온 것 자체도 문제다. 동반성장을 하려면 정치권과 MB정부가 먼저 반성부터 해야 한다. 그게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여야 한다.

 김상룡 취재총괄부국장srkim@etnews.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