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46>

 청와대 정보통신비서관 신설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 시 기회 있을 때마다 줄곧 “정보화가 국정의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세계화와 정보화를 국가발전 2대 전략목표로 제시, “세계화 정책의 핵심은 국가사회 정보화에 있다”며 국가정보화사업 추진전략을 적극 추진했다.

 1996년 5월 14일.

 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 김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 기능조정안이란 문서에 서명했다.

 총무수석실에서 올린 결재서류였다. 정보화 정책 기능을 보강하기 위해 대통령 경제수석실에 1급인 ‘정보통신비서관’을 신설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경제수석실에서 정보통신업무를 관장하던 비서관은 ‘산업정보비서관’이었다. 청와대는 이 직제를 개편해 ‘통상산업비서관’과 ‘정보통신비서관’으로 분리했다.

 1급인 정보통신비서관 신설의 의미는 남달랐다.

 예나 지금이나 청와대는 국정운영의 컨트롤타워다. 국정 중추에 정보통신 전담비서관을 신설한 것은 청와대가 국가정보화 사업의 종합기획과 조정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미였다. 이는 정보화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정책의지 표명이었다. 청와대 측도 “정보통신비서관 신설은 김 대통령이 범국가차원에서 정보화를 직접 챙기겠다는 조치의 일환“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정보통신비서관은 업무영역이 확장된 정통부 관장업무를 조정하고 정보화 및 정보산업관련 정책을 관리 지원하는 업무를 맡기로 했다.

 청와대는 이와 함께 이각범 정책기획수석(현 대통령소속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장) 아래 ‘정책4비서관’을 신설했다. 정책4비서관 업무는 정보화추진확대 보고회의 운영과 정보화 추진위원회 및 그 산하 위원회 업무지원과 조정, 그리고 21세기를 대비한 국가 장기과제발굴 관리 등이었다.

 청와대 내 직제 개편은 예고된 일이었다.

 김 대통령은 후보시절 정보통신 분야 공약을 발표하면서 행정조직을 개편해 청와대에 정보산업담당 대통령 특별보좌관제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대통령은 특별보좌관 대신 정보통신비서관을 신설한 것이다.

 김 대통령은 이에 앞서 5월 1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주재하면서 “청와대 내 정보화 추진체계도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회의에는 김영우 위원장(작고) 등 자문위원 11명과 박재윤 통상산업부 장관(부산대 총장 역임)과 안병영 교육부 장관(현 연세대 명예교수), 이석채 정통부 장관(현 KT 회장), 정근모 과기처 장관(명지대 총장 역임, 현 한국전력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설립추진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정보화추진확대회의를 설치해 분기마다 부문별 정보화사업이 잘 추진되고 있는지를 대통령이 직접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21세기는 정보통신기술이 앞선 나라가 세계를 제패할 것이므로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정보기술개발과 정보산업발전에 가일층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각 부처 기획관리실 명칭을 기획정보실로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작업은 실현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보화추진확대회의는 정보화추진위원회(위원장 이수성 국무총리) 위원, 민간자문위원 등으로 구성해 민관합동 추진체계로 운영하며 필요 시마다 회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자문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보고를 통해 △국가정보화 추진체계 보강 △전 국민의 정보화동참 유도 △정보과학기술과 SW산업 육성 △민간 정보화 활성화 지원 △초고속정보통신기반 조기구축 등을 주요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또 정보화에 관한 원활한 업무협조를 위해 청와대 안에 정보화업무협의회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다. 협의회는 정보통신비서관과 정책4비서관을 간사로, 기획조정비서관과 재정경제비서관을 고정멤버로 참여시켜 정보화업무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청와대 내 정보통신비서관 신설과정에서 소관 업무를 놓고 이견도 없지 않았다.

 당시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으로 정보화 과제 소위원회를 이끌었던 양승택 소위원장(정통부 장관, 동명대 총장 역임, 현 KAIST 초빙석좌교수)의 회고.

 “청와대 이각범 수석과 이석채 정통부 장관 간에 입장이 엇갈렸다. 이 수석은 자신이 대통령으로부터 정보화를 담당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물러나지 않았다. 이 수석과는 정보화비서관(정책4비서관 지칭)을 두는 것으로 조정했다.”(‘끝없는 일신’에서)

 정부는 5월 18일 초대 정보통신비서관에 강상훈 정통부 정보통신협력국장을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정통부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1급 자리가 늘어난데다 정통부 대외위상이 과거에 비해 수직상승했기 때문이다. 강 비서관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1969년 행정고시에 합격, 상공부 전력석탄국장을 거쳐 정통부 정책심의관, 정보통신정책국장 등으로 일했다.

 시간을 거슬러 청와대 정보통신비서관 신설 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1995년 12월.

 이성옥 정보통신공무원 교육원 교수부장(정통부 정보화기획실장, 정보통신연구진흥원장 역임, 현 한국플랜트산업협회 부회장)은 이계철 차관(한국통신 사장 역임)의 호출을 받았다.

 “청와대 행정관으로 나가시오.”

 “차관님 그 자리는 서기관이 나가는 자린데요.”

 그는 정통부 기획과장을 거쳐 3급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상태였다. 당연히 그런 되물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가시오.”

 별 도리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는 1996년 1월부터 청와대 경제수석실 산업정보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정식 발령은 2월 28일자로 났다. 그것은 청와대 내 인력정원(T/O)을 정리하는 데 시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경제수석은 구본영 수석(과기처 장관 역임, 작고)이고, 직속 상관인 산업정보비서관은 오강현 비서관(산업자원부 차관보, 특허청장 역임, 현 대한석유협회장)이었다.

 그 무렵 청와대 비서실 직제에 정보통신 전담비서관은 없었다. 부처별 업무에 따라 과기처는 과학기술비서관, 건설교통부는 건설교통비서관, 재정경제원은 재정경제비서관 등을 설치한 것과는 크게 달랐다.

 이 행정관의 회고.

 “사전에 이 장관과 구 경제수석 등 윗분 간에 비서관 신설에 대해 합의를 했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행정관이었으나 실제 업무는 비서관처럼 일했습니다. 다른 행정관은 비서관을 거쳐 업무를 보고하는데 저는 비서관을 거치지 않고 정보통신 업무는 곧바로 경제수석에게 보고했습니다. 수석 주재 회의에도 다른 비서관들과 같이 참석했습니다.”

 과도기적인 현상이긴 했으나 그는 혼자서 이일저일을 하느라 바쁘게 뛰어다녔다.

 청와대 근무 시 그는 대통령 말씀자료에 정보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고 한다. 국가정보화에 대한 김 대통령의 관심이 워낙 높다 보니 그런 내용은 말씀자료에 거의 반영했다는 것이다.

 경제수석실에 정보통신비서관이 신설되자 그는 6개월 만에 청와대를 나와 정보통신연구관리단(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으로 파견을 나갔다. 정통부에 그가 갈만한 자리가 없었다.

 그와 관련해 구 경제수석은 이 행정관에게 “그냥 눌러 있어도 되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1급 자리에 갓 승진한 3급이 갈 수는 없었다.

 그가 파견을 나가자 이석채 장관조차 몇 번이나 “서운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청와대에 1급 자리를 만드는 데 고생한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얼마 후 국방대학원에 입교했다.

 강상훈 국장은 5월 초 청와대 비서관 내정을 통보받았다.

 강 비서관의 회고.

 “그 무렵 장관이나 차관이 저한테 이야기를 했는데 누군지는 기억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2급 국장에서 청와대 1급 비서관으로 승진해서 가는 자리였습니다.”

 그는 내정과 동시에 곧장 청와대로 가서 김광일 비서실장(작고)에게 보직신고를 하고 경제수석실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대통령께는 직접 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정보통신비서관 사무실은 청와대 동관 2층 경제수석실 옆에 마련했다. 비서관실에는 행정관 1명이 정통부에서 나와 근무했다.

 그가 정보통신비서관으로 일하는 동안 구본영 경제수석에 이어 이석채 경제수석, 김인호 경제수석(철도청장, 공정거래위원장, 중소기업연구원장 역임, 현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 등 3명의 경제수석을 모셨다. 이석채 장관은 1996년 8월 개각에서 장관급 경제수석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정보통신비서관실 행정관으로는 이인호 서기관(현 주미대사관 상무관)과 남궁민 서기관(지식경제부 정보통신산업정책관, 우정사업본부장 역임) 등이 근무했다.

 강 비서관은 김영삼 정부가 김대중 정부로 바뀔 때까지 2년 이상을 정보통신비서관으로 일했다.

 청와대 근무를 마친 그는 정통부로 복귀했으나 1급으로 갈 자리가 없었다. 그는 1999년 1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2년 반가량 근무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그는 게임업체인 엔씨소프트 감사로 10년여간 재임하다 지난해 퇴직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청와대 정보통신비서관 자리는 없어졌다.

 청와대에 정보통신비서관 신설 과정은 힘들었지만 없애는 일은 손바닥 뒤집듯 간단했다. 세상사 그렇듯이 세우기는 어려워도 허물기는 쉬운 법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