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촉진기본계획
상상력은 미래다.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은 ‘한국판 퓨처플랜’이었다. 기술이란 토대 위에 상상력을 더해 ‘ICT강국’ 미래를 설계한 것이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이었다.
1996년 6월 11일.
정부는 이날 오전 서울 종합청사 국무위원 회의실에서 이수성 국무총리(새마을중앙회장 역임,통일을 위한 복지기금재단 이사장) 주재로 제1차 정보화추진위원회를 열고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을 심의, 확정했다. 제안자는 이석채 정보통신부 장관(현 KT 회장)이었다.
이석채 장관의 회고.
“미래는 IT시대입니다. 당시 정보화는 국가경쟁력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가정보화 설계는 시대의 필연이었습니다.”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은 2010년까지 5년마다 3단계로 나눠 국가정보화를 실현하겠다는 결의에 찬 국가발전전략이었다.
이 기본계획은 △그동안 부처 단위로 분산했던 정보화 추진체계를 일원화했고 △제외했던 민간분야 정보화를 포함시켜 국가개조 차원의 종합적인 정보화 설계도였으며 △국가정보화를 정보통신부가 총괄키로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달랐다.
1995년 1월. 국가정보화 총괄부서로 출범한 정보통신부는 정보화촉진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2010년까지 세계 최고수준의 정보화를 실현한다는 목표아래 그해 2월 5일 부문별 계획안을 작성했다.
노태우 정부시절 정보사회종합대책을 마련한데 이어 정보화촉진기본계획 작성을 총괄한 정홍식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 차관, 데이콤 부회장 역임)의 증언.
“정통부 출범 후인 1994년 12월말 정보통신정책실장과 초고속기획단장 겸임발령을 받은 후 경상현 정통부 장관(현 KAIST 겸직교수)으로부터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을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고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이 계획은 크게 정보화촉진계획과 정보통신산업육성계획, 그리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과 여건 정비계획 등으로 구분했어요. 우리나라의 정보화 정책 역시 기술발전과 사회 경제적 변화를 정보화 전략에 반영해 계획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계획은 경제기획원의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처럼 정보화는 5년 단위로 정통부가 국가정보화를 총괄해 추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계획안의 업무라인은 강상훈 정책심의관(청와대 정보통신비서관, 정보통신연구진흥원장 역임)과 류필계 정보정책과장(정통부 정책홍보관리본부장 역임, 현 LG유플러스 부사장), 김영수 사무관(현 경인지방우정청장), 강성주 사무관(행정안전부 정보기반정책관 역임, 현 OECD대표부 파견)이었다.
류필계 과장의 말.
“국가 정보화의 근간이 되는 두 가지 작업을 병행했습니다. 정보화촉진기본법과 정보화촉진기본계획입니다. 기본법은 강 사무관이, 기본계획은 김 사무관이 전담했습니다. 이 가운데 기본법 제정은 난관이 많았습니다. 부처 간 협의가 안 돼 과천에 있는 통상산업부를 제가 22번이나 방문했고 그래도 정리가 안 돼 총리실에 중재를 요청했습니다. 직원들이 장기간 집에 못 들어가기가 일쑤여서 가족이 옷을 가져다주곤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 법은 8월 4일 공포했고 1996년 1월 1일부터 시행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2001년 2월 펴낸 회고록에서 기본법 제정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나는 정보강국을 위해 1995년 8월 정보화촉진기본법을 제정했다. 정보화 입국을 위한 법적 뒷받침을 완비한 것이다. 이 법에 근거해 1996년 4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정보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국가 차원에서 종합적인 정보화시책을 추진토록 했다.”
정통부는 기본법이 제정되자 정보화촉진기본계획 작성에 속도를 냈다.
정홍식 실장의 회고.
“정보사회는 정보 활용 능력과 정보통신산업의 발전 정도가 국민 삶의 질을 결정하고 일류국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민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에서 정보화에 대처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정보화는 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 국가경쟁력과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핵심수단이었습니다.”
정통부는 그해 10월 정보화촉진기본계획 1차 시안을 작성해 정홍식 실장 주재로 11월 관계부처 실무자 회의를 열었다.
1995년 12월과 1996년 1월에 정통부 인사로 정책심의관에 서영길 국장(정통부 우정국장, TU미디어 사장 역임, 현 IGM세계경영연구원장)이, 정보정책과장에 정경원 과장(우정사업본부장 역임, 현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이 발령나면서 업무라인에 변동이 있었다.
기술기획과장으로 옮긴 류필계 과장의 증언.
“기본계획 골격을 마련해 후임인 정경원 과장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각 부처에서 정보화에 대해 잘 몰라 정통부가 주도적으로 안을 만들었습니다.”
정통부는 1996년 들어 한국전산원(현 한국정보사회진흥원)과 통신개발연구원(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전문인력을 파견받아 실무작업을 진행했다.
한국전산원에서 황종성 박사(현 서울시정보화 기획단장)와 통신개발연구원에서 최수혁 박사(KISDI 연구위원, 스트라베이스대표 역임)가 이 작업에 가세했다. 이들은 서울 광화문우체국 7층 사무실에서 주로 작업을 했다.
정경원 과장의 회고.
“기획안 작성과정에서 각 부처가 무엇을 할지 잘 몰라 정통부에서 이런 일을 하라고 해당부처에 제시했습니다. 이석채 장관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획통이어서 실무진들이 장관 마음에 드는 기획안을 작성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실무반은 해외 사례와 세계 IT관련 리포트를 구해 모두 읽었다. 외국사례를 참고해 안을 만들고 각 부처와 협의를 진행했다.
김영수 사무관의 말.
“저는 처음부터 이 업무만 담당했습니다. 2년여 이 일을 했지요. 1년 중 거의 절반은 집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계획안을 만들어 밤을 새며 토론을 하고 내용을 보완했습니다. 각 부처 계획을 총괄해 이를 편집하고 교열까지 보면서 계획서를 만들었습니다. 월요일부터 기획안을 작성해 금요일 보고한 후 다시 지침을 받아 주말도 없이 수정작업을 했습니다. 실무회의와 부처협의회에 배석해 나온 의견을 계획서에 반영했습니다.”
김 사무관과 황종성 박사는 동년배여서 호흡이 잘 맞았다. 업무는 황 박사가 정보화촉진과 통신망 분야를, 최 박사가 정보통신산업육성분야를 맡아 계획서 초안(草案)을 작성했다. 여름에는 작업하다 책상위에서 신문지를 덮고 잠깐씩 눈을 붙였다.
황종성 박사의 증언.
“저는 1995년 11월부터 계획안 작업반에 참여했습니다. 부처 의견을 수렴해 최종 계획안을 작성했는데 힘은 들었지만 큰 보람이었습니다.”
실무작업반은 각 부처 부문 계획을 종합해 1996년 2월 2차 시안을 작성했다.
그해 3월 26일 이계철 정통부 차관(한국통신 사장 역임, 현 KT동우회 회장) 주재로 관계부처 1급회의를 열어 계획안을 논의해 시안을 발표했다. 회의에서 거론된 다소 미흡한 사항은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보완했다.
정홍식 실장의 회고.
“나중에는 각 부처별로 관련 사업을 10대 과제에 서로 포함시키려고 경쟁이 치열했어요. 환경부는 환경전산인력을, 건교부는 SOC 분야를, 내무부는 토지, 주민등록 발급 정보시스템 추가 구축을, 법제처는 전자정부 구현분야 중 법원종합법률센터 추가해달라는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이런 것은 부처 간 협의와 사업별 면밀한 검토를 거쳐 최대한 추가했습니다.”
그해 5월16일 국무총리실에서 강봉균 행정조정실장(정보통신부 장관, 청와대 기획·경제수석, 재정경제부장관 역임, 현 민주당 국회의원) 주재로 각 부처 차관회의를 열어 계획안을 논의했다.
그해 6월4일. 정보화추진위원장인 이수성 국무총리는 정보화추진에 대한 민간의견 수렴을 위해 구성된 정보화추진위 자문위원회 위원 21명에게 위촉장을 주었다. 민간위원장은 장수영 포항공대(현 포스텍) 총장이 맡았다. 위원은 ▲강창언 연세대 교수 ▲고건 서울대 교수 ▲김성희 KAIST 교수 ▲구자공 KAIST 교수 ▲김재전 전남대 교수 ▲정재영 성균관대 교수 ▲황종선 고려대 교수 ▲양승택 ETRI 소장 ▲이진주 생산기술연구원장 ▲김영태 LG-EDS 고문 ▲박성규 대우통신 회장 ▲이동훈 생산성본부회장 ▲박한규 연세대 교수 ▲이돈희 교육개발연구원장 ▲김재혜 주택산업연구원 ▲김종길 국방정보체계연구소장 ▲원동호 성균관대 교수 ▲신영무 변호사 ▲이기호 이화여대 교수 ▲변도은 한국경제신문주필이었다.
정보통신부는 이날 정보화추진자문위원들에게 정부안을 설명하고 자문을 구했다.
이 계획안은 6월 11일 정보화추진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됐다.
김영수 사무관의 말.
“제 공직생활에서 이 계획안을 만든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윗분들이 믿고 인력을 지원해 주고 기다려 준 덕분이있습니다. 이 작업을 하던 1996년 3월 서기관으로 승진해 이 일을 끝낸 후 자리를 옮겼습니다.”
기본계획의 목표는 2010년까지 3단계에 걸쳐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전자정부구현 등 정보화촉진 10대 중점과제 추진, 초고속정보통신망 조기 구축 및 정보통신산업 기반조성 등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1단계(1996∼2000년)는 정부의 선도투자로 정보화촉진 기반을 조성하고 2단계(2001∼2005년)는 개인생활의 정보화 산업정보화를 중점 추진, 정보 활용을 확산시키며 3단계(2005∼2010)에는 사회 전 분야의 정보화와 세계정보유통 거점화를 통해 정보 활용을 고도화하기로 했다.
정부가 추진할 10대 중점과제는 ▲전자정부 구현 ▲교육정보화 기반 구축 ▲학술·연구정보 이용환경 조성 ▲정보화 촉진을 통한 기업경쟁력 강화 ▲정보화를 통한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활용도 제고 ▲지역정보화 지원 ▲정보기술을 활용한 의료서비스 고도화 ▲환경관리의 정보화 ▲국가안전관리 정보시스템 구축 ▲선진 외교·국방정보 체계 확립 등이다. 정통부는 추진과제 담당기관과 협조기관을 명확하게 정해 정보화 과정에 차질이 없도록 했다.
이 계획이 오늘날 ICT강국 구현의 교범(敎範)이 됐다. 미래는 상상력을 설계하는 국민의 소유였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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