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포커스]고농축우라늄

최근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키워드는 `고농축 우라늄(HEU·High Enriched Uranium)`으로 압축된다. 고농축 우라늄은 한마디로 천연 우라늄을 농축시킨 것이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이언스포커스]고농축우라늄

각국은 내년까지 자발적으로 이를 적극 줄여나가자는데 합의했다. 고농축우라늄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연구용 원자로의 핵연료로 사용되는 동시에 핵무기 원료로도 쓰이는 양면성 때문이다.

◇농축된 원료=우라늄은 `우라늄235`의 함량에 따라 감손우라늄(DU), 천연우라늄(NU), 저농축우라늄(LEU), 고농축우라늄(HEU)으로 나뉜다. 우라늄은 천연에 존재하는 방사성원소의 하나로 채굴작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천연우라늄은 원자핵분열을 할 수 있는 우라늄235가 0.7%, 나머지는 핵분열하지 않는 우라늄238로 구성된다.

천연우라늄을 원자력 발전소 연료나 핵무기 제조에 사용하려면 우라늄235 구성비를 높여야 한다. 이를 `농축`이라 부른다. 발전소 연료는 2~5%, 핵무기 제조를 위해서는 95% 이상 우라늄235의 비율이 필요하다.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이 있다`는 표현은 핵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천연 우라늄을 농축시켰다는 뜻이다.

통상 고농축 우라늄 25㎏이면 핵무기 한 개를 만들 수 있다. 지난 2010년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 이후 8개국에서 480㎏의 고농축 우라늄을 폐기했다.

아직 지구상에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이 1750톤 정도가 남아 있다.

◇핵무기 원료를 줄이자=최근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합의된 고농축 우라늄 제거 노력은 이를 평화적 사용 목적으로 전환하자는 의미를 지닌다. 고농축으로 만든 무기용 핵물질의 성질을 바꿔 발전소 연료나 연구용으로 사용하는 것. 동시에 고농축 우라늄이 필요한 연구·의료용 원자로의 연료도 저농축 우라늄으로 대체하자는 노력이다.

우라늄 농축 과정에서 U-235를 잃은 감손우라늄이나 천연우라늄과 섞어 발전소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농도를 낮출 수 있다.

우라늄(94%)과 플루토늄(6%)을 혼합해 경수로용 혼합핵연료(MOX)를 제조·사용함으로써 고농축 우라늄을 제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술은 말처럼 간단치 않다. 기술이 부족한 국가는 우라늄을 미국이나 러시아 의 기술을 빌려 해결한다. 우크라이나가 대표적이다. 핵물질을 가장 많이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는 고농축 우라늄 제거 기술로 1980년대 후반 이후 각각 10.5톤과 64톤의 고농축우라늄을 폐기했다. 핵무기 3000개를 제조할 수 있는 분량이다.

◇연구용 원자로도 저농축으로=고농축우라늄은 일부 연구용 원자로에도 원료로 사용된다. 전 세계에는 고성능원자로 20여 기가 운용되며 이곳에서 매년 사용하는 고농축우라늄이 600㎏가 넘는다. 핵폭탄 24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세계 각국이 연구용원자로에 사용되는 고농축 우라늄도 줄이고자 노력 중이다. 테러리스트나 불순 세력 손에 고농축 우라늄이 들어갈 경우 핵무기나 방사성 물질을 장착한 무기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이 연구로용 저농축우라늄 개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제조수율이 50%를 밑돌고 불순물이 많았다. 고농축우라늄을 핵연료로 사용할 때처럼 고성능을 내려면 저농축우라늄의 성질과 형태를 바꿔줘야 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1989년에 개발한 원심분무기술은 저농축우라늄을 핵연료로 압축하기 쉽게 분말로 가공하는 기법이다. 금속 핵연료 우라늄-몰디브덴(U-Mo)을 섭씨 1600~1800도인 고온의 진공 상태에서 녹인 뒤 용해된 U-Mo을 고속회전 원판 위에 뿌리면 U-Mo가 미세하고 균일한 분말 형태로 응고된다. 분말을 압축시키면 우라늄의 밀도가 높아져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할 때만큼 충분한 핵분열 반응을 일으킨다. 우리나라, 미국, 프랑스, 벨기에 4개국이 연구용 원자로에 사용하는 원료를 고농축우라늄에서 저농축우라늄으로 전환하자고 합의한 배경에는 바로 이 기술이 있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