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연연구기관(출연연) 등 공공 연구기관에 근무 중인 이공계 박사 절반은 해외로 취업할 경우 국내로 복귀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열악한 연구 환경이 첫 번째 이유다.
11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이공계인력 육성·활용과 처우 등에 관한 실태 조사`에서 지난해 공공연구소 이공계 박사 중 해외 취업 후 국내 복귀할 의향이 없거나 낮다고 응답한 비율은 48.1%나 됐다. 이 비율은 지난 2010년 처음 조사했을 때 보다 9.8%포인트(p)나 높아졌다. 국내 복귀를 꺼리는 이유는 `연구 환경`이 55%로 가장 많았고, `자녀교육`(12.2%)이 뒤를 이었다.
출연연 박사들이 고유 연구개발에 집중하지 못한 것은 업무 비중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지난해 공공 연구기관 이공계 박사들의 연구개발 업무는 65.6%로 전년(75.6%)보다 10%p나 떨어졌다.
이런 환경이라면 정부가 해외 우수 연구인력 `리턴`을 위해 야심차게 벌이고 있는 `브레인 리턴 500` 사업도 `헛구호`에 거칠 공산이 크다.
한주동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노동조합위원장은 “수행해야 할 연구과제 수가 늘고 연구 지원은 줄고 있다”며 “연구원들이 연구보다는 수행과제 계획서나 사업평가서 작성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본업보다는 행정 업무 비중이 점점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ETRI의 경우, 2006년에서 2010년 사이 수행 과제 수는 285건에서 388건으로 103건 늘어난 데 반해 과제당 평균 지원 예산은 18억4000만원에서 11억5000만원으로 37.5% 감소했다.
성과주의예산제도(PBS)도 연구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로 지적됐다. 목표를 정해두고 사후 달성 여부에 따라 구성원 인사·보수까지 차별을 둔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사업 부처가 다원화되면서 각 사업 PBS를 따기 위해 연구원들이 연구할 시간을 많이 뺏긴다”며 “낮에는 사업관리 등 자료를 만들고 밤에 R&D 한다는 소리도 나온다”고 말했다. 공공 연구소에 근무하는 이공계 박사의 주당 근무시간은 지난해 45.9시간으로 2010년에 비해 3.7시간 증가했다. 기업(3.0시간 증가), 대학(0.1시간 감소)에 비해 증가폭이 컸다.
이 관계자는 “이공계 박사들이 연구에 전념하지 못하게 하는 연구기관 환경이 우수인력 해외 유출을 부채질 한다”며 “외국 대학에서 공부하다 국내 복귀할 경우 연구환경과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상목 과학기술단체총연합 사무총장은 “미국과 일본의 경우 개별 연구를 기관이나 정부에서 기본적으로 지원한다”며 “우리는 잘해도 50% 정도지만 최소한 3 대 7(PBS 대 지원) 비중은 보장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총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하는 R&D 정책 때문에 연구자들이 안정적 연구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도 해외 취업 선호를 부추긴다”고 덧붙였다.
KISTEP는 “해외 취업 의향과 실제 취업이 높은 상관성을 보이지 않지만 국내 노동환경의 현실을 보여주는 척도로는 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연구 환경 악화는 연구 생산성 감소, 해외로 이직 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개선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표/공공연구소 연구원 분야별 업무비중 (단위:%)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