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리더]이지수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 초대소장

“15년 전이나 5년 전이나 같은 사람이 같은 내용으로 슈퍼컴퓨터를 사용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은 슈퍼컴퓨팅 활용이 전 산업으로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지만 우리는 제자리걸음입니다. 빅데이터 처리가 현안으로 부상했듯 슈퍼컴퓨팅 능력과 활용이 앞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입니다.”

[과학기술 리더]이지수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 초대소장

우리나라 슈퍼컴퓨팅 체계 정립의 초석을 놓고 있는 이지수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 초대소장의 얘기다. 슈퍼컴퓨터가 온라인결제사이트 `페이팔`에서 사기성 결제를 찾아내는데 쓰이고 증권거래는 물론 의학 분야에서 임산부의 제왕절개를 할 것인지 말 것인 지까지 분석, 판단하는 시대가 됐지만, 국내선 이제 시작이다.

이 소장은 자체 슈퍼컴퓨터 개발 계획도 갖고 있다. 올해 기획을 마무리한 뒤 내년부터 기술 개발에 착수할 계획이다. “그동안 리눅스나 자이온, 포스데이터 등 국내기업들이 슈퍼컴 개발에 나섰다 모두 접었습니다. 쓰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인력풀이 약했습니다.”

이 소장은 기상청 예를 들었다. 일기를 정확히 예측하려면 하드웨어를 돌려야하고, 이를 통해 데이터를 모은 뒤 프로그램으로 분석하고 예측하는 사람이 톱니가 돌아가듯 해야 하는데 당시엔 이를 뒷받침할 인력이 약해 `중과부적`이었다고 이 소장은 분석했다.

“국내 슈퍼컴퓨팅 분야의 엉성한 체계를 잡을 국가 차원의 기본 틀은 마련됐습니다. 지난 해 `국가초고성능컴퓨터 활용 및 육성에 관한 법률`도 제정됐고,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까지 출범했으니 이제는 진정한 슈퍼컴퓨팅 생태계를 구축해 가는 일만 남은 셈입니다.”

이 소장이 현재 우리나라 슈퍼컴퓨팅 체계 정립을 주도하고 있지만, 그가 지금까지 달려온 길은 순탄치 만은 않았다. “한 때 모든 일을 혼자 다해보겠다고 24시간 일을 붙들고 생활한 적도 있습니다. 출근하면 서 있을 수 없을 정도가 되니,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 소장은 남들보다 다소 이른 40대 초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슈퍼컴퓨팅센터(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 전신)의 운영을 책임지는 센터장직을 맡았다. 일 욕심을 부리다 스트레스로 병원 신세까지 지기도 했다. “지난 2005년 당시엔 해외 출장만 한해 10회가 넘었습니다. 심지어 양해각서(MOU) 문건까지 직접 수정하며 챙겼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미친 듯이` 많은 일은 했지만, 운영의 묘는 다소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업무를 잘 분장해 연구원들이 책임감 있게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이 소장은 별명이 `아톰`이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우주소년 아톰의 헤어스타일을 닮았다고 해서 연구원들이 붙여 놨다. `아톰`이 정의의 용사인 것처럼 이 소장의 성정도 올곧기 그지없다. 순박한 얼굴에 남 속일 줄 모르는, 천생 과학기술자라는 평가다.

이 소장은 다산네트워크로 자리를 옮긴 이상산 박사의 잇단 `유혹`에 넘어가 지금의 KISTI에 자리를 잡았다. 미국서 전산물리학으로 석, 박사학위를 받고 독일 슈퍼컴퓨팅센터에서 슈퍼컴을 이용한 자연현상을 연구했다. 조영화 KISTI 초대원장에 의해 지난 2004년 슈퍼컴퓨터 센터장으로 발탁돼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 설립까지 주도하게 됐다. “인프라나 활용, 기술력 측면서 명실 공히 슈퍼컴퓨팅 세계 7대 강국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소장의 새해 바람이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