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품평회에서는 결정하라.
디자인이란 그 회사 제품의 문제점을 발견해서 해결하는 일인데, 조직 내부에서는 그 문제가 잘 보이지 않는 때가 많다. 조직은 일단 그 속에 들어가면 문제를 정확히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기도 어렵다. 설령 그것을 보더라도 냉정하게 이야기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디자인은 일부분이라도 외부 컨설턴트가 필요하다.
![[김영세의 디자인스토리]<11> 디자인은 결정이다](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3/02/26/395745_20130226113959_165_0001.jpg)
새로운 디자인의 선호도 조사를 꼭 해야 한다면 그 회사 중역보다는 해당 제품을 사용할 소비자 집단을 선정해 회의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디자인 시안을 놓고 바쁜 중역들이 모여 회의하는 것은 디자인 자체를 비평하거나 수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여러 안을 두고 어떤 공정을 거쳐 어떻게 생산해서, 어떻게 팔고, 개발과 생산에 비용은 또 얼마나 들지 이 모든 것을 기업의 최고 전문가들로서 의논하려는 것이다.
디자인이 감동과 합리의 복합체라고 본다면 감동, 즉 정서적인 면에서는 디자이너의 손에서 이미 설계가 끝난다. 기업의 중역은 논리를 따져 디자인을 결정한다. 자신이 의뢰한 디자이너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디자인 회의 문화는 새로운 의견을 존중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끌어내는 방향이어야 한다.
1997년 가을 창원에서 있었던 냉장고 디자인 품평회는 불과 30분 만에 끝났다. 품평회에 참석한 사장은 이노디자인의 설명이 끝난 후 간단한 질문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의 질문은 `이노디자인의 책임자가 가장 선호하는 디자인은 어떤 안이냐`는 것이었다. 나의 대답을 듣고 구자홍 당시 사장은 내 손을 꽉 잡은 채 이야기했다.
“내가 선택한 디자인도 바로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품평회에서 LG의 양문형 냉장고 `디오스`의 첫 번째 모델이 결정됐다. 10개월 만에 출시된 디오스는 경쟁사의 시장 점유율을 따라잡은 히트 상품으로 많은 소비자에게 사랑을 받았다.
나는 기업 경영인들이 디자인 품평회에 들어올 때 청문회장에 들어가는 자세가 아니라 축제의 장에 동참한다는 기분으로 참석하기를 당부하고 싶다. 지위 고하를 떠나 자신의 의견을 유쾌하게 말하며, 내외부를 막론하고 새로운 시도를 불편하게 여기기보다는 반갑게 맞이하고, 기술, 마케팅, 광고 등 여러 측면에서 철저히 검토한 후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디자이너에게 책임을 지우고 자신감을 사라.
디자이너는 각각의 프로젝트에서 여러 개의 디자인을 내놓을 수 있다. 다양한 디자인을 내놓는 일은 물론 중요하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여러 개의 디자인 중에서 과연 어떤 디자인이 가장 성공률이 높은 `꼭 맞는 디자인`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두세 가지 안을 들고 갔다면 그 디자인은 모두 시장에 내놓았을 때 타당성이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 작업 과정에서 대여섯 가지 안이 나온다 해도 나는 냉정하게 잘라 버리고 어떤 것을 선택해도 판매에 이상이 없을 디자인만을 제시한다. 나에게 디자인 책임을 맡긴 이상 기업이 엉뚱한 선택으로 망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정도 확신도 없는 디자인이라면 프레젠테이션에는 들고 가지 않는 것 또한 나의 자존심이다.
가끔 이런 예측, 즉 성공의 예감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질문을 받곤 한다. 과연 이런 예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난감한 질문이다. 우선 사회 경제, 세계 흐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연구한다는 것이 그 답의 20% 정도는 될 듯싶다.
하지만 그보다는 어떤 타고난 재능에서 오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진단해 보곤 한다. 무감각하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도 아이디어를 착안하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 아이디어가 실현된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일, 자신의 상상에 흥분하며 빠져 드는 일,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의욕적으로 부딪치는 일 등은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의 타고난 예측 능력을 믿고 자신감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힘도 디자이너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자신감이 없는 디자이너는 어떤 일도 추진하지 못하고, 자신 있게 프레젠테이션을 하지 못하면 그 디자인은 채택되지 못할 수도 있다.
◇남과 차별성을 꾀하라.
디자인의 성공 여부는 창조적인 디자이너의 느낌과 감각, 직관에 더욱 크게 좌우된다.
디자인은 고객과 얘기하거나 문제점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영감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작업에 가깝다. 처음에 떠오른 순간적인 영감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머릿속에 아이디어의 실체를 확실하게 떠올려 모델을 만든다.
이 단계에서 고객의 사업성을 따져서 디자인을 선택해야 한다. 디자인의 구체화 과정에서 사람들은 흔히 시장 조사와 소비자 연구를 바탕으로 디자인 요소를 수집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기업의 디자인 부서든 디자인 전문 회사든 사람이 많다고 디자인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몇몇 사람은 같은 기술과 동일한 조건을 주어도 독특한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제대로 된 디자인을 할 수 있다. 디자이너의 직감도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 끝에 어렵사리 만들어진다. 경험이란 클라이언트와의 협업 과정과 제품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거쳐서만 가능하다. 창의적인 발상은 기본이다.
가장 개인적인 작업으로 간주되는 디자인은 통찰력 있는 한 사람이 진취적으로 끌고 나가지 않으면 오합지졸의 폐해가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기업 경영인은 디자인을 잘 이해해야 한다. 디자인 책임자를 트인 눈으로 잘 선택한다면 좀 더 적은 비용으로 기대한 효과를 올릴 수 있다.
나는 이를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교수로 일할 때 `CIPD(Corporate Identity through Product Design)`라고 정의 한 바 있다. CIPD 전략은 제품 디자인을 기업 브랜드 이미지 창출이라는 큰 프로젝트의 한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일반 디자인 컨설팅과는 차별화 된다. 성공적인 CIPD의 결과물은 고객들로부터 사랑받고 가까이 느껴지는 브랜드로서의 완성이다.
CIPD 전략은 이노디자인 특유의 컨설팅 테마로 한국의 많은 고객사들에게도 전달됐다. 그래선지 CI가 일시적인 광고 효과보다도 더욱 중요한 브랜드 전략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경영인은 이제 많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기업 내부거나 외부거나 디자인 조직의 누군가는 경영진과 함께 기업의 브랜드전략으로 CIPD를 추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디자인으로써 소비자에게 그 회사 제품의 인지도를 높여 매출 증대로 연결할 수 있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