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63>`e코리아 민관협의회` 출범

김대중정부는 지식정보 강국을 향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남궁석 정보통신부 장관(작고)은 `사이버코리아`를 추진했고, 안병엽 장관(ICU 총장·17대 국회의원 역임, 현 KAIST 초빙교수)은 사이버코리아 후속으로 `e코리아`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e코리아 추진에는 재계가 발 벗고 나섰다. 정부와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이들 정책의 명칭은 달랐지만 지향점은 지식정보 강국이었다.

`e코리아 추진 민관협의회`가 2001년 9월 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경제인클럽에서 발족했다.<연합뉴스>
`e코리아 추진 민관협의회`가 2001년 9월 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경제인클럽에서 발족했다.<연합뉴스>

아침 저녁엔 서늘하고 한낮은 햇살이 내려쬐는 초가을인 2001년 9월 5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19층 경제인클럽에서 `e코리아 추진 민관협의회`가 발족했다. 발족식에는 양승택 정보통신부 장관(현 IST 회장)과 김각중 전경련 회장(작고, 경방 명예회장 역임), 이용태 전경련 정보통신위원장(삼보컴퓨터 회장 역임, 현 퇴계학연구원 이사장),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현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 신윤식 하나로통신 회장(체신부 차관 역임, 현 정보환경연구원 회장), 이용경 KTF 사장(KT 사장·18대 국회의원 역임), 최준근 HP 사장, 윤문석 한국오라클 사장(VM웨어코리아 지사장 역임), 고현진 한국MS 사장(한국SW진흥원장 역임, 현 LG유플러스 부사장) 등 정보통신 업계 최고경영자 150여명이 참석했다.

양승택 장관은 `향후 정부의 e코리아 추진 정책방향` 발표에서 “국내 IT산업 수요 기반 확충을 위해 공공정보화 투자 확대로 민간 투자 위축을 보완하겠다”면서 “협의회에서 구체적인 e코리아 프로젝트가 마련되고, 이를 바탕으로 IT산업 경쟁력이 제고되면 우리 경제는 재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각중 회장은 인사말에서 “우리나라가 대내외적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IT산업 등 신산업에서 성장엔진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용태 위원장은 협의회 설립 배경에 대해 “한국을 정보기술 강국으로 육성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같이 고민하기 위한 모임”이라고 밝혔다.

협의회 공동의장은 정통부 장관과 전경련 회장이 맡기로 했다. 협의회는 △IT인력 양성 △소프트웨어 발굴·육성 △디지털 경영환경 구축 △인프라 △법·제도의 5개 과제를 중점 추진하기로 하고 정통부 차관과 전경련 정보통신위원장이 단장인 `e코리아 추진기획단`을 구성 운영하기로 했다.

기획단은 산학연 전문가 15명으로 자문위원회와 5개 과제별 분과위원회(정부 측 국장급·민간 측 임원급 공동 주관), 분야별 실무작업반(과장급·팀장급)을 구성하기로 했다. 정보화추진자문위원장에는 박찬석 경북대 총장을, 정보화평가위원장에는 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를 위촉했다.

IT인력분과위원회는 정기적으로 IT투자와 인력 수요 동향을 조사해 인력수급 정책과 연계하며 정보통신 사이버대학 설립을 지원하고 기업 대상 사이버교육 인프라 구축도 지원하기로 했다.

SW프로젝트분과위원회는 전 교과서 디지털화, 평생건강관리 시스템 구축, 기업활동지원 시스템 구축, 헬스케어, 차세대 금융서비스 시스템 구축 등 10대 프로젝트를 집중 육성하기로 했다. 또 IT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초고속망 고도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디지털경영환경분과위원회는 전통기업의 온오프라인 통합모델을 개발하고 업종별 데이터 표준화와 중소기업 정보화 활성화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인프라분과위원회는 초고속망 고도화와 차세대 인터넷 기술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민·관·학 합동으로 정보격차 해소에 나서기로 했다.

법제도분과위원회는 IT산업육성특별법 제정과 인적자원 양성을 위한 교육 및 훈련법 제도 개선, IT산업의 수출 전력화 및 기술혁신 체계를 확립하기로 했다.

당시 정통부 e코리아 업무라인은 김창곤 정보화기획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 아래 김동수 정보기반심의관(정통부 차관 역임), 남궁민 기획총괄과장(현 한국산업기술시험원장), 나승식 서기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비서실장), 정석진 사무관(현 산업통상자원부 바이오나노과장)이었다. 정 사무관이 e코리아 실무를 담당했다.

김동수 당시 정보기반심의관의 말.

“e코리아가 성과를 거두려면 기업의 적극 참여가 필요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경련이 e코리아 전략을 발표하고 협력체 구성을 요청해 민관협의회를 구성하게 됐습니다.”

이에 앞서 그해 2월 19일.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정통부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안 장관은 “그동안 구축한 정보 인프라를 기반으로 국가사회 전반의 지식정보화를 촉진해 우리나라를 지식정보 강국 `e코리아`로 건설하겠다”면서 “정보격차를 줄이기 위해 올해 주부, 장애인, 노인 등 400만명에게 정보화교육을 실시하고 고속인터넷을 내년까지 전체 가구의 60%인 850만가구에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정보화 사회가 되고 인터넷 이용자가 크게 늘면서 불건전한 정보 유통, 정보격차, 개인정보 보호문제 등 폐해가 있다”면서 “국민이 마음 놓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건강한 정보화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국민의정부 들어 지식정보화 산업을 추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나라가 됐다”며 “이제는 지식정보화 기반이 마련된 만큼 정통부가 부가가치를 높여 국력 신장의 계기로 삼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해 3월 8일.

김각중 전경련 회장은 이날 오후 4시 30분 서울 신라호텔에서 정례 회장단회의를 열고 e코리아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핵심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IT인력 100만명을 집중 양성하는 등 전 산업의 IT화로 우리나라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5년 안에 미국 수준으로 향상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략은 이용태 당시 전경련 부회장의 작품이었다.

이용태 당시 전경련 부회장의 회고.

“회장단회의에서 e코리아 추진전략을 제안했는데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어요. 정통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수시로 만나 나름대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정부 측에 제시했는데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어요.”

당시 정통부 기획총괄과에서 이 업무를 총괄했던 나승식 당시 서기관의 말.

“당시 전경련의 추진전략은 이용태 회장께서 주도했습니다. 정책 아이디어도 이 회장이 냈습니다. 당시 전경련에 e코리아 추진 전담팀이 있었어요. 정통부가 e코리아 정책을 추진하면서 전경련 의견을 나름대로는 반영했습니다.”

전경련은 e코리아 추진전략 발표를 통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세계 각국의 정보화 디지털화 경쟁에 대응해 재계와 정부가 손잡고 국가적 차원의 정보화를 추진함으로써 IT 선진국으로 진입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정보화로 IT 선진국에 진입하고 향후 5년 내 제조업,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미국 수준으로 향상시킨다는 목표로 e코리아 프로젝트를 민관 협력으로 추진하며 e코리아 프로젝트의 5대 추진전략은 △SW산업 육성방안 △IT 전문인력 양성 △B2B 환경 구축 △IT 인프라 구축 △관련 법령 제·개정 정비를 제시했다.

전경련은 IT 추진사업의 일환으로 2000년 세계 시장 1.25% 수준에 불과한 국내 SW산업을 2005년 생산 37조2000억원, 수출 33억달러를 달성할 수 있는 미래전략산업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하기로 했다.

전경련은 SW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술 추세에 부합하는 고급 기술인력의 부족과 공격적 해외 진출 부재, SW산업의 성장 기반 취약 등 제반 문제점을 극복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를 해소하는 데 최대한 노력하기로 했다.

전경련은 민관의 역량 결집과 산학연이 힘을 모아 앞으로 5년 내 100만 IT 전공 또는 부전공 인력을 양성키로 했다.

전경련은 범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키로 한 e코리아 활동을 다양하게 펼치기 위해 경제 4단체 공동으로 정보화 추진 프로젝트팀을 구성하기로 하고 동시에 단시일 내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경제 체제 진입을 위해 대통령 주재 IT추진회 구성을 건의하기로 했다.

2002년 6월 5일.

정통부와 전경련은 이날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김태현 정통부 차관(정보통신진흥연구원장·하나로텔레콤 회장 역임)과 이용태 정보통신위원장 등 관계자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e코리아 추진기획단 회의를 열었다.

당시 정통부 고위인사 K씨의 말.

“이용태 회장의 정보화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SW인력 10만명 양성 의지는 강력했습니다.”

기획단은 △IT인력 양성 △소프트웨어산업 육성 △디지털경영 환경 구축 △IT 인프라 구축 △법·제도 개선 5대 분야 20개 프로젝트를 선정했다.

협의회는 20개 프로젝트의 세부 추진계획을 확정하고 이달 중순부터 5개 분과위원회별로 사업에 착수하기 위해 총 35억원(정통부 10억원, 전경련 25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기획단은 또 이 프로젝트와 별도로 IT 관련 전반에 걸쳐 핵심 이슈를 분석하고 정책과제를 도출하는 `e코리아 리포트사업`도 병행 추진키로 했다. 기획단은 20개 프로젝트 추진으로 도출되는 결과를 협의회 심사 및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내년부터 정책에 적극 반영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렇게 의욕적으로 출범한 e코리아 민관협의회는 2002년 16대 대선 바람이 불면서 사실상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했다. 2003년 차기 정권이 들어서고 장관이 바뀌면서 e코리아 전략은 `u코리아`로 진화했다. 정책의 소멸과 생성의 한 단면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