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산업계가 미국 정부의 세탁기 반덤핑·상계관세 부과 조치의 부당함을 관철시키는 데 연초부터 총력을 기울인다. 심화할 것으로 보이는 한국 기업에 대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적극 대처하기 위함이다. 전문가는 민관의 공격적 대응은 반덤핑을 일삼는 기업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상쇄하는 동시에 한국 기업을 쉽게 공격할 수 없다는 인식을 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15일 관련 정부당국 및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 9일 세계무역기구(WTO)에 반덤핑·상계관세 조치 철폐를 위한 재판절차 착수인 패널설치를 요구했다. 지난달에 이어 두 번째 요구다.
1차 요구에서는 피소국인 미국 정부가 패널설치를 거부했다. 피소국의 패널설치 거부는 재판절차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일종의 의사 표명으로 관행화돼 있다. 우리 정부는 곧바로 추가 패널설치를 요청했다. 2차 패널설치 요구에는 피소국의 반대가 있더라도 WTO 회원국 전체가 반대하지 않는 이상 자동 설치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오는 22일 WTO 분쟁해결기구 회의에서 패널이 설치될 것”으로 예상했다. 의장과 의원 3인으로 구성될 패널은 우리 정부가 제소한 미국의 WTO 협정 위배의 법리 검토에 착수한다. 미국 측이 반덤핑관세에 적용한 표적덤핑과 제로잉 기법이 WTO 협정 위배 소지가 있다는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상계관세에서는 정부의 임시투자세액공제와 연구인력개발비세액공제의 보조금 판정 여부가 관건이다. 미국은 우리 정부가 삼성전자에 제공한 세액공제를 보조금으로 판정,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WTO가 우리 정부의 세액공제를 보조금이 아니라고 판정하면 미국은 상계관세 조치를 시정해야 한다. 전례를 볼 때 패널 설치에만 한두 달이 소요되며 중재 또는 시정 조치에는 2~3년이 걸린다.
정부와 별개로 피소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를 상대로 3월에 재심을 신청할 예정이다. 작년 1월 미국 ITC가 상무부의 한국기업 세탁기 반덤핑·상계관세 부과 승인의 첫 대응 조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재심 신청을 통해 작년 결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양사와 함께 반덤핑 판정을 받은 대우일렉트로닉스는 미국 수출물량이 미미해 재심 신청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 측은 “반덤핑과 상계관세 부과는 부당한 조치로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3월 연례재심회의에서 재심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천일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보호무역주의에 공세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덤핑을 일삼는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심을 수 있다”며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기업도 막대한 비용 소요로 대응이 쉽지 않겠지만 이미지 훼손을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의사 표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준배·이호준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