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2주년 특집1-새로운 기회, 창조]사용후핵연료 세계는 지금

지난 60년간 경제선진국의 기초 체력 역할을 해왔던 원전이 사용후핵연료라는 커다란 과제 앞에 서있다. 한때 르네상스를 꿈꿔왔던 원전은 이제 핵연료 처리 문제 앞에서 안정성과 경제성의 재검증을 요구받고 있다. 국가별로 영구처분장을 건설하고 재처리를 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통용될만한 속 시원한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미국 노스아나 원전 부지에 마련된 핵연료 건식저장시설
미국 노스아나 원전 부지에 마련된 핵연료 건식저장시설

세계 각국은 보다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개발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책 마련을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공식 활동하면서 최근에서야 해법 마련 대열에 동참했다. 자원빈국 여건상 원전은 필요하고 핵연료 저장 공간은 곧 넘칠 예정이다. 해외 핵연료 문제 선도국가 벤치마킹이 절실한 지금이다.

◇원전 대국 ‘미국’의 고민과 노력

미국은 상당량의 핵연료를 사용하고 있다. 현지에는 103기에 달하는 원전이 가동 중이며 매년 2000톤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하고 있다. 지금까지 쌓여있는 사용후핵연료만도 7만톤 안팎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핵연료는 원전 내부 습식저장시설과 부지 내부 건식저장시설에 분리 저장되어 있다. 핵연료가 임무를 다하고 배출됐을 때는 습식저장시설에서 보관한다. 7년 정도 뒤 열과 방사선이 줄어들면 건식저장시설로 옮긴다. 현재 52개 원전이 중간저장 형태인 건식저장시설을 가지고 있고 금속과 콘크리트 용기를 이용해 핵연료를 밀폐 보관하고 있다.

미국은 발전소에서 상업적으로 사용된 핵연료 이외에도 핵무기 제조와 핵 항모 사용 후 배출된 폐기물 처분대안도 필요하다. 특히 무기 전용이 가능한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들이 안보에 필요한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남아있어 어떤 형태로든 해법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해법 마련을 위한 정책적 진행은 일시정지 상태다. 1987년 네바다주의 유카마운틴 지역에 최종 처분장을 지으려 했던 프로젝트가 2009년 백지화되면서다. 52개 원전에서 중간저장 형태로 보관 중인 핵연료 대다수도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 유카마운틴 처분장으로 옮겨졌어야 한다.

당시 미국에서는 한국의 공론화위원회와 유사한 ‘블루리본위원회’가 활동을 했다. 핵연료 처리 국가 정책에 대한 권고를 내리기 위함이었다. 블루리본위원회는 유카마운틴 프로젝트 취소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한 상황에서 현세대의 핵연료를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

블루리본위원회 보고서는 얼마 전 국내 전문가 그룹이 발표한 검토의견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처분장 부지 선정의 주민 동의 △핵연료 전담 조직 신설 △복수의 영구 폐기 심지층 시설과 중간저장시설 필요 △원자력 기술과 인력에 대한 개발 등이다. 처분장의 필요성은 인정하되 국민 수용성을 담보하고, 관련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큰 줄기는 같은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권고 보고서 도출에도 미국 핵연료 정책은 잠시 휴무 상황이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로 관련 이슈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최종 처분장의 카드를 쉽사리 만지지 못하고 있다.

현재 미 에너지부는 단계적으로 중간저장시설과 최종 처분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중앙집중식 중간저장 시설은 2025년까지 인허가를 완료하고 2048년에는 심지층 최종 처분장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관련 계획은 수정될 수 있고 백지화된 유카마운틴 프로젝트가 재개될 수도 있다. 미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핵연료 저장용기와 운송관련 기술을 고도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59기의 원전을 운영 중인 프랑스에는 매년 1200여톤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한다.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라하그 재처리시설로 운반돼 습식저장시설에 저장된다. 아레바가 운영하는 라하그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핵연료 재처리시설이다. 이곳에서 처리되는 핵연료만도 세계 핵연료의 90%에 달한다. 매출액은 10억3000만유로며 5700여명의 아레바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라하그에서는 핵연료 재처리를 통해 혼합산화물연료(MOX)를 만들어내 이를 전력 생산원료로 다시 사용한다. 59기의 원전 중 21기가 MOX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고 있고 이는 프랑스 전체 전력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독일, 스위스, 벨기에, 일본 등이 MOX 연료를 사용한 바 있고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사용을 검토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핵연료 최종 처분장을 검토했지만 국민의 반대로 무산됐다. 법적 근거는 마련했다. 2006년 ‘방사성폐기물관리법’을 제정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과 장수명 중준위 방사성폐기물에 대해서는 회수 가능한 심지층 처분을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처분장 선정을 위한 부지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최종 처분장 운영개시는 2025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다른 곳과 달리 프랑스는 회수가 가능한 시설을 계획 중이다. 예상부지 지질학적 투명성은 지층처분연구시설인 MHM이 담당하고 있다. 이곳은 지질학적 환경평가와 암반에 따른 처분개념 확립, 핵연료 지질학적 격리에 대한 기술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부지와 지층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는 이유는 내년 처분장 건설 인허가 신청을 목표로 한 과정 중 하나로 해석되고 있다.

프랑스는 표층처분이 불가능한 모든 방사성폐기물을 심층 처분할 수 있는 시설을 운영하기에 앞서 내년까지 중간저장시설을 신규 건설하거나 기존 임시저장시설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또 2020년까지 장수명 핵종분리 및 소멸처리의 시범 원형설비를 추진하고, 2040년까지 준공할 예정이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와 핵연료 재처리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전 50기의 원전을 운영했지만, 지금은 2기만 가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50기가 정상 가동했던 시기 일본의 연간 핵연료 배출량은 1000톤가량이었다. 일본 역시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핵연료 관리정책의 중심을 재처리로 잡고 있다. 2005년까지는 프랑스와 영국에 위탁해 핵연료를 재처리했지만 로카슈무라에 연간 800톤을 재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하지만 시운전 과정 중 문제로 수차례 운영이 연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총 처분장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최종 처분장 부지공모를 추진했지만, 2007년 고치현 도요초 지자체가 최초로 응모했다 스스로 철회했다.

중간저장시설은 확보하고 있다. 아오모리현 무쓰시에는 로카쇼무라 재처리 시설로 가기 전에 핵연료를 저장하기 위한 장소가 있지만, 국내에서 통용되는 재처리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현재 국내 원자력계가 말하는 중간저장시설은 최종 처분장 건설 이전 단계의 개념이지만, 일본은 재처리 시설 이동의 중간과정으로 이 시설을 사용하고 있다.

중간저장시설의 핵연료 보관기간은 50년 정도로 제한적이다. 연간 배출되는 1000톤의 핵연료 중 800톤가량이 재처리될 경우 남은 200톤을 임시저장하기 위한 시설로 재처리될 때까지 열과 방사능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2010년 건설을 시작했다. 후쿠시마 사고로 1년간 공사가 중단된 후 올해 완공됐지만, 일본 정부의 안전기준 개정 작업으로 이 역시 운영되지는 않고 있다.

일본은 퇴적암 지역인 호로노베와 화강암 지역인 미WM나미에 지층처분연구시설을 설치하고 심부 지질환경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심지층 환경에서의 공학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지금 재처리에 핵연료 정책의 비중을 두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최종 처분장 계획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주요국 원전 및 핵연료 처리 현황

핵연료 처리, 필요성 인정하고 준비해야

핵연료 처리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원전의 힘을 빌려 고도성장을 한 국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년간의 논의와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지금도 최종 처리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곳은 없다.

미국과 프랑스, 일본 사례를 볼 때 이들 역시 국민 수용성 측면에서 해법 마련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우리와 다른 점은 이들이 최종 목표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핵연료 처리 시설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위한 준비는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국내 사정은 핵연료 처분 문제가 언급될 때마다 원전 폐기 논란이 일고 있다.

해외에서도 핵연료 해법을 위한 공론화 작업이 진행돼 왔다. 하지만 이 공론화 과정에서 처분장 인허가에 대한 견해나 원전 정책에 대한 검토를 하지는 않았다. 순수하게 지금 현재 존재하는 핵연료를 어떻게 처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의가 그 중심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럽고 위험한 물질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만큼 안전하고 투명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게 기조였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시 원전의 가동과 신규 건설 여부를 떠나서 지금 현재 원전 내에 불안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는 핵연료를 보다 안전하게 별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원전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과정에는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자력에 대한 일반인들의 가장 큰 선입견은 무기다.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핵융합도 그 시작은 무기였다. 이미 스리마일과 체르노빌 사고 이후에도 계속되는 원전 르네상스 과정에서 불신이 싹텄고, 총체적 난국을 보여준 후쿠시마 사고에서 그 불신은 극에 달했다. 일부 원전 종사자들은 후쿠시마 사고와 관련 쓰나미로 인한 사상자일뿐 원전으로 인한 사상자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분노를 사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원전은 이제 안전성을 넘어 경제성에도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핵연료 처리의 비용문제와 셰일가스의 발견이 원전의 위상을 크게 위축시켰다. 페이지 캠프 미국 노스아나 원전 라이센스 슈퍼바이저는 “핵연료 처분을 위해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셰일가스로 인한 화력발전소들의 가격 인하로 원전의 경제성 확보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핵연료 처리와 관련해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기술개발에 열중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핵연료 처리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보다 안전하고 경제적인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한다.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핵연료 저장시설 건설기간을 따지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지만, 이를 위한 기술, 인력, 그리고 인재를 양성할 전문가조차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며 “부지선정은 물론이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모든 인프라를 종합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간 32주년 특집1-새로운 기회, 창조]사용후핵연료 세계는 지금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