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학자]추민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자체 제작·개발한 초음파 집속 장치 성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물과 기름을 섞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과 기름을 섞는다는 것은 궁극의 분산 물질을 만들었다는 뜻이거든요.”

[대한민국과학자]추민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추민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산업측정표준본부 신기능재료표준센터장의 물과 기름섞기 연구는 이렇게 시작됐다.

“물과 기름을 섞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름입자를 나노크기(10억분의 1 m)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름입자는 서로 응집하게 되어 짧은 시간 내에 물과 분리되기 쉽습니다.”

추 책임은 “새로 개발한 ‘초음파 집속 장치’를 이용했다”며 “6개월 뒤 물과 기름이 섞인 상태를 확인했는데 섞은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반도체 공정은 물론이고 대표적 화장품 성분으로 많이 쓰이는 세티올(Cetiol) 오일과 천연 올리브 오일을 계면활성제를 쓰지 않고 증류수와 섞을 수 있다.

계면활성제 없이도 물속에 오일을 나노크기로 분산(나노에멀젼)할 수 있어 친환경 화장품, 제약 및 의약 분야에 새로운 개념의 신제품 개발 적용이 가능하다.

“물과 식용유가 제대로 섞였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뛸 듯 기뻤습니다. 태어나서 손에 꼽을 만큼의 희열을 느꼈죠. 연구 성과를 확인한 순간이 밤 10시쯤이었는데 평소에도 연구하다보면 밤 11시를 넘기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이 기술은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여러 곳에서 큰 관심을 갖고 연구성과를 묻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국립대서 박사학위를 받은 추 책임의 학창시절 별명은 ‘뻔철’이었다. 고교시절 밤늦도록 축구를 하고, 버스비로 호떡을 사먹고 당시 버스차장에게 사정해서 집에 가 ‘뻔뻔스럽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지금도 밤 11시까지 연구에 몰입하고도 버틸 수 있는 탄탄한 체력은 이때 만들어졌다.

고등학교 때 밤늦게까지 열심히 배웠던 기계실습과 기계설계는 그를 자연스레 과학기술자의 길로 이끌었다.

추 책임이 공학도의 길을 선택한 계기는 자신이 만든 측정기기에서 정확한 측정값이 산출되는 것을 보고 온 감동 때문이다. 그때 실험실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재료공학도의 길을 가기로 마음 먹었다.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고 기존 물성을 향상시키는 일이 재미있어 박사과정에서 재료공학(세라믹)으로 주전공도 전환했다.

추 책임은 현재 실험실 스케일의 소규모 연구장치를 개발해 운영 중이다. 향후 대량생산, 자동화 공정에 적용 가능하도록 연구장치를 ‘스케일 업’해 나갈 계획이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