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창업 실전강의]<75>제품 가격, 무엇이 결정하는가

[박정호의 창업 실전강의]<75>제품 가격, 무엇이 결정하는가

많은 예비창업자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가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에 얼마의 가격을 부과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나마 유사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어 있는 경우에는 경쟁사 가격과 비교해 적정가격을 산출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가 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제품과 서비스로 시장에 진출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은 투여된 비용에 적정이윤을 추가하는 형태로 가격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가격 결정은 전략적인 방식이라 보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과 서비스에 부여된 가격을 소비자가 적절하다고 인지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가 공간 연출을 통해 적정 가격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기업은 매장의 공간구조만 바꿔도 손님들의 지불 수준이 달라지거나 없었던 구매 욕구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 왔다. 동네에 위치한 소박한 커피숍에서 커피값이 5000원을 넘는 것을 발견할 경우 비싸다고 생각하고 발길을 돌린다. 하지만 특급호텔 커피숍에서 기꺼이 1만원이 훌쩍 넘는 커피값을 지불한다. 즉, 적정 금액에 대한 기준이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제조·유통일괄형(SPA) 매장은 공간을 활용해 적정 가격을 인식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SPA 매장들의 경우 저가 옷을 취급하는 매장임에도 불구하고 고급스런 매장 분위기와 초대형 매장을 운영한다. 세계적으로 SPA 매장의 평균 매장 크기가 2000평 수준이다. 저가 옷을 취급하다보니 많은 마진율을 남기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초대형 크기의 고급스런 매장 분위기를 구성하는 것이 자칫 손해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다.

SPA 매장이 초대형 매장을 운영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자신들이 취급하는 의류가 비록 저가이라 하더라도 싸구려 옷은 아니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저가 옷을 취급하는 아울렛 매장들의 경우 옷을 접힌 채 팔거나 심지어 수북이 쌓아 놓고 파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러 옷들이 뒤엉켜 수북이 쌓여 있을 경우 오히려 초저가라는 인상을 더욱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쌓아 놓는 경우도 많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SPA 매장이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다른 데 있다. 소비자들이 저가 옷이기 때문에 품질이 떨어지거나 의류의 품격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매장이 클 경우 옷을 다양한 방식으로 진열할 수 있다. 옷에 따라 마네킹에 입혀 전시할 수도 있고, 옷걸이에 하나하나 가지런히 걸어서 전시할 수도 있고, 매대 위에 올려놓고 전시할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함으로써 싸구려 옷이라는 인상을 탈피할 수 있다.

초대형 매장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조명 때문이다. 옷을 더욱 예쁘게 보여 사고 싶게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조명이다. 매장이 작을 경우에는 다양한 조명을 설치하여 활용하더라도 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하지만 매장이 클 경우에는 탑조명, 사이드조명 등 다양한 조명을 활용해 특정 옷을 더욱 주목하도록 유도하거나, 옷에서 남다른 아우라가 느껴지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이 역시 저가 옷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상에서 예시한 바와 같이 공간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저가의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싸구려 제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시킬 수도 있다. 반대로 고가 제품이라도 고급스런 분위기를 연출하여 해당 제품에 높은 가격이 부과된 것에 결코 의구심을 갖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지금 적정 가격 산출에 고심하는 CEO가 있다면, 적정가격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해당 가격이 적합하다 인식시키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