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02> 크리스텐슨에게 묻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02> 크리스텐슨에게 묻다

어느 날 인텔 앤드루 그로브 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로 날아갔다. 약속 시간에 나타난 그로브는 “10분밖에 시간이 없을 것 같군요”라고 말했다. 적어도 30분은 필요하다고 했다. “미안해요. 인텔이 어떻게 하면 되는지만 말해 주세요.” 내 머리는 소용돌이에 빠졌다.

우리는 경영자로 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 이 중요한 질문에 우리는 익숙지 않다. 우리는 이미 누군가 내려놓은 정답에 의존한다. 그리고 종종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끈다.

누구나 배우는 이론에 함정은 숨어 있기 마련이다. '한계'란 개념도 그 가운데 하나다. “내 선택이 만드는 추가된 것”이란 의미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결과로 얻는 비용이나 수익을 말한다. 실상 기업 경영은 한계 선상에서 이뤄진다. 이렇게 우리는 배웠고, 상식이 됐다.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전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블록버스터는 한때 시장 최강자였다. 어느 동네든 매장 전면을 뒤덮는 푸른색 바탕에 노란색으로 쓴 'BLOCKBUSTER' 간판을 볼 수 있었다.

비즈니스 모델에도 흠결이 없었다. 인기 영화 테이프를 잔뜩 가져와 대여하고 비용을 받는다. 회전율만 높으면 된다. 진열장이 비면 빌수록 수익은 늘어난다. 제때 반납하지 않으면 연체료를 물린다. 한때 수입의 70%가 연체료였다.

그런데 여기 착안한 기업이 있다. 이걸 뒤집어 보면 어떨까. 매장은 없애고 연체료 대신 연회비 받고, 집안에 나뒹구는 반납 안 된 테이프가 수익이 되는 사업이다. 넷플릭스는 블록버스터의 정반대 극단에서 시장에 들어온다. 2002년에 매출 1억5000만달러를 넘기자 블록버스터도 이 시장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찾지 못했습니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기존 시장 강자 블록버스터에 이 우편 렌털 시장이나 온라인 시장은 계륵같아 보였다. 무엇보다 비용이 너무 컸다.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자신의 매장과 경쟁해야 할 판이었다. 새로 얻을 수익은 별반 크지 않았지만 치러야 할 비용은 엄청난 셈이었다. 그러나 블록버스터는 자신의 기존 시장이 어느 날 사라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셈해 보지 않았고,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자신의 얘기를 하나 덧붙여 들려준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 시절 농구팀 주전 센터가 됐다. 대학농구대회에서 준결승까지 승승장구한다. 그때 문제가 생긴다. 준결승 날짜에 자신과 약속한 일이 있었다. 코치는 이번 단 한 번만 어기면 안 되겠냐고 한다. 크리스텐슨은 고민 끝에 경기를 포기한다.

크리스텐슨이 출전했다면 우승을 했을지 모르고, 얻을 영예는 커 보였다. 반대로 비용은 별반 없었다. 인생에 단 한 번 자기와 약속을 어기는 것 아닌가. 그러나 크리스텐슨은 이 '단 한 번의' 비용은 인생 전체라고 말한다. 크리스텐슨은 경영자에게 “99%보다는 100%가 쉽다”는 것에 주지하라고 조언한다.

크리스텐슨은 지난 1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많은 저작과 혁신 개념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크리스텐슨이 2010년에 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란 기고문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글은 읽어 보길 조언한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크리스텐슨 경영학'은 잘 알면서 정작 '크리스텐슨 경영'은 알지 못할지 모른다. '인간 크리스텐슨'을 아는 마지막 1%가 당신의 삶과 기업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02> 크리스텐슨에게 묻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