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K-제조, 일류에서 초일류로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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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는 일상 생활부터 사회, 문화, 경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산업 역시 코로나19로 초유의 위기를 겪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셧다운' 등의 조치가 내려지며 세계 곳곳에서 공장 가동이 멈췄다. 유통과 판매도 타격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세계적 모범 방역 국가로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과정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함께 한국의 산업 경쟁력이 큰 힘이 됐다. 코로나19 진단키트부터 마스크와 세정제 같은 방역 물품에 이르기까지 탄탄한 제조 역량이 위기 극복을 뒷받침했다.

안정적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해 가면서 산업과 경제 회복 속도도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빨랐다. 이제는 회복을 넘어 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발전시키고, 경쟁력을 키우는 계기로 삼고 있다. 특히 한국의 뛰어난 제조 기술 경쟁력은 일류를 넘어 초일류를 향해 진화하고 있다.

한국 산업이 코로나19 속에서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제조업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7.8%로 독일(21.6%), 일본(20.8%)보다 높다. 미국(11.6%)이나 영국(9.6%)과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대면 서비스가 중요한 서비스업과 달리 제조업이 중심을 잡으면서 산업과 경제가 흔들리지 않았다.

제조 경쟁력은 코로나19를 극복하는데 직접적인 보탬이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와 손세정제 등 방역 물품이 부족해지자 국내 제조기업들이 발빠르게 사업을 전환해 생산을 지원했다. 반도체 장비회사인 톱텍이 마스크 제조설비를 개발하고, 화장품 회사인 코스맥스가 손 세정제를 생산했다. 소주 회사는 세정제 원료가 되는 주정을 기부했다.

삼성전자는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중앙회와 함께 국내 마스크 제조업체와 진단키트 제조업체 등의 생산량 증대를 위해 스마트공장 사업을 지원했다. 삼성전자는 E&W, 레스텍, 에버그린, 화진산업 등 국내 마스크 제조업체에 제조 전문가를 파견해 마스크 생산 향상을 도왔다. 이를 통해 국내 마스크 제조사들의 생산량이 기존보다 51% 증가했다. 삼성전자는 진단키트업체인 솔젠트, SD바이오센서, 코젠바이오텍 등에도 스마트공장 보급을 지원했다.

이처럼 한국이 코로나19를 제조 경쟁력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다양한 제조산업에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실제로 'K-제조'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기술 개발을 거듭하며 일류에서 초일류로 진화하고 있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부터 각종 소재와 부품, 가전, TV,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제조 역량은 산업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발전하고 있다.

세계 D램 시장을 선도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극자외선(EUV) D램' 시대 개막을 준비하고 있다. EUV는 13.5나노미터(㎚·10억분의 1m)로 파장 길이가 짧은 광원이다. 기존 광원인 불화아르곤(ArF) 대비 10분의 1 수준이다. EUV는 반도체 웨이퍼 상에 더 정밀한 패턴을 새길 수 있고, 공정 단계도 단축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과감한 기술 투자를 통해 지난 3월 10나노 1세대(1x) D램에 EUV를 적용했고, 8월에는 3세대 10나노(1z) 제품에도 적용했다. 현재는 4세대 10나노(1a) D램에 EUV 적용을 추진하며 '초격차'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도 D램에 EUV 적용을 추진 중이다. 내년 초 1a D램 양산에 EUV 공정을 적용할 계획이며, 2022년에는 1b급 D램 개발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술력 역시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이 EUV용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같은 핵심 소재에 대해 수출 규제를 단행하면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이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이것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한국은 산학연관이 힘을 모아 핵심 기술 내재화를 위해 노력했고, 글로벌 공급망도 재편했다. 정부도 기술 자립을 체계적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수출규제 대응을 넘어 한국을 첨단 산업 생산기지로 육성하는 방안까지 추진 중이다.

TV와 가전 경쟁력 역시 세계 최고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TV 시장에서 14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LG전자는 글로벌 가전 기업 중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1위에 올라있다. 단순히 실적만 좋은 것이 아니다. QLE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마이크로 LED 등 최신 TV 기술과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가전 분야에서도 스타일러, 스팀가전 등 기존에 없던 시장을 창출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모두 탄탄한 기술력과 제조 역량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다만 뛰어난 제조 기술과 역량을 갖췄음에도 국내 제조 기반이 약한 것은 한계로 지적된다. 국내 기업들은 해외 타깃 시장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해외에 제조 거점을 마련하고, 국내 제조기반을 해외로 이전했다. 그러나 해외 이전에는 국내의 높은 노동시장 경직성과 고임금, 각종 법과 규제 등도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정부도 리쇼어링(본국 회귀) 활성화를 지원하고 나섰다. 해외에 생산거점을 구축한 우리 기업들을 국내로 끌어들여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우리 산업계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촉매 역할을 기대한다. 이번에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기업들도 해외 거점 운영에 어려움을 체감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