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정의선 시대'의 과제

[데스크라인] '정의선 시대'의 과제

지난 2015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전시장에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를 비롯해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BMW, 토요타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가 총출동한 CES 전시장을 1시간여 동안 돌아봤다.

그 가운데 정 부회장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살펴본 것은 바로 토요타의 수소전기차 '미라이'였다. 미라이는 세계 첫 세단형 수소전기차다. 2013년 수소전기차를 가장 먼저 양산한 현대차의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였다. 게다가 토요타는 바로 전날 수소전기차 특허 공개와 함께 수소 생태계 구축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했다. 현대차에게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던 셈이다.

정 부회장은 미라이 엔진룸 내부를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또 어떤 설명도 듣지 않고, 두 손을 엔진룸 앞에 얹은 채 생각에 잠겼다. 전자·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해 새로운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는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가 맞닥뜨린 도전과 고민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장면이었다.

그로부터 6년이 훌쩍 지난 2020년 10월, 정 부회장은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정 회장은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불확실한 경영 상황에서 글로벌 톱5 자동차그룹을 '새로운 장(New Chapter)'으로 이끌어 가야 하는 책무를 맡게 됐다. 모두가 예상한 3세 경영의 시작이지만, 자동차를 넘어 대한민국 산업계에 미칠 영향이 절대 적지 않다.

정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자동차 산업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생태계 구축을 위한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6년 전 스치듯이 내보인 그의 고민은 더 깊어졌을 것이고, 대응 방안도 구체화했을 것이다.

정 회장은 성능과 가격을 모두 갖춘 전기차와 혁신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자율주행기술,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활용한 친환경 에너지 솔루션에 방점을 찍었다. 또 로보틱스와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스마트시티와 같은 미래 기술을 빠르게 현실화해 한 차원 높은 삶의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 회사에 머물지 않고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가기 위한 청사진이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가 강조했듯 창의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한 긍정적인 마인드와 임직원이 함께 힘을 모으면 충분히 이뤄 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 회장은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와 협업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이미 가능성은 확인했다. 정 회장은 최근 국내 배터리 3사 중심으로 삼성, SK, LG그룹 수장들과 연쇄 회동했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그룹의 심장인 남양연구소로 초대해 손을 맞잡았다. 대한민국 산업 양대 축인 전자와 자동차의 융합이 비로소 시작되는 신호탄이다. 그 손을 놓지 말고 협력 수준과 산업 간 융합을 더 가열 차게 밀고 나가야 한다.

우리 산업계는 항상 위기를 극복하며, 또 그 속에서 기회를 찾으며 성장해 왔다.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고 재편되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도 예상보다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장으로 접어들고 있는 미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처하기 위한 주력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산업 간 융·복합, 수직적 통합이 지상 과제다. 이 과정에서 제조업의 총아인 자동차가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해야 한다.

정의선 회장은 정주영 그룹창업주와 정몽구 명예회장과는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 또 대한민국 산업계의 명운도 함께 짊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자리의 무게가 그렇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은 함께 나누고 가야 더 멀리 갈 수 있는 법이다.

[데스크라인] '정의선 시대'의 과제

양종석 산업에너지부 데스크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