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현 교수의 글로벌 미디어 이해하기]〈34〉미디어전쟁에서 스케일이란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인해 국내 미디어 시장이 경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이전과 다른 크기의 시장 규모는 시사하는 바도 많겠지만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넷플릭스로 대변되는 글로벌 OTT는 가입자도 억명대에 이르고,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포함해 콘텐츠 비용 규모도 조 단위를 넘는다.

기하급수적 가입자 확보를 통해 국내 미디어 시장을 헤집어 놓고 2억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한 넷플릭스를 필두로 조만간 통신사와 협력해서 국내에 진출할 또 다른 강력한 OTT 디즈니플러스도 1억명 이상 가입자를 단기간에 모은 채 국내시장을 향해 진격하고 있다.

또 프라임 고객만 2억명이 넘는 아마존프라임 등도 국내시장에 조만간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 수천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다른 OTT도 마찬가지다.

최근 열린 한 세미나에서 한 미국 재무분석 투자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디어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스케일'을 들었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스트리밍이 대세인 미래 미디어전쟁에서 싸울 수 있는 무게와 크기가 되지 않는다.

그는 미디어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통적 미디어그룹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 스케일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재무적인 관점의 이야기이지만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스케일을 번역하면 규모라 할 수 있다. 경영학적 개념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얘기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미디어전쟁은 규모의 전쟁인 것이다.

“콘텐츠는 킹이다.” 미디어산업에서 곧잘 인용되는 유명한 말이다. 그러나 이 재무분석 투자자는 드림웍스 창업자인 제프 캐천버그가 “플랫폼이 킹이고 콘텐츠는 킹메이커”라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그의 논리를 펼쳤다.

여기서 플랫폼이라는 것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과 같은 이른바 거대 테크플랫폼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플랫폼이 미디어를 포함한 모든 산업을 다 파괴하고 있다.

미디어 회사가 테크플랫폼이 되는 것보다는 테크플랫폼 회사가 미디어를 품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라고 한다. 그들에게는 거대한 현금 창출력이 있으며, 플랫폼 속성상 고객과 직접 관계를 맺고 있어 콘텐츠 추가는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OTT는 가입자 확보와 유지를 위해 엄청난 양의 새로운 콘텐츠를 가입자에게 지속 제공한다. 가입자 입장에서 OTT는 기존 유료방송과는 다르게 클릭 한 번으로 해지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광고 기반의 OTT를 포함한 다른 경쟁 OTT에 쉽게 가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업자 입장에서는 그들을 묶어 두고 유인할 만한 새로운 콘텐츠가 필요하다. 사업자가 천문학적 투자를 감내할 수 있는 스케일이 스트리밍 시대에서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건이 얼마 전에 발생했다. 아마존이 미식축구 중계권료로 매년 10억달러 넘게 지불하기로 북미미식축구리그(NFL)와 계약했다. 계약은 OTT가 본격적으로 스포츠 중계를 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 테크플랫폼 사업자들이 거대한 자금을 앞세워 이른바 '리니어' 방송 시장 마지막 보루의 하나인 스포츠 중계에까지 발을 내디디고 중계권 획득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볼 때 스케일, 규모의 경제를 만들기 위해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할 수 있는 것은 합병밖에 없다는 충고다.

시선을 국내시장으로 돌려보자. 국내시장 규모는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 비해 훨씬 작다. 국내 사업자의 콘텐츠와 기술 투자 규모, 국내 테크플랫폼의 '네트워크 효과'는 그들과 '자릿수'(order of magnitude)가 다르다. 그리고 저가로 고착된 국내 유료방송 시장의 척박한 환경은 미디어환경과의 차이가 너무 크다.

이 같은 여건 속에서 지속해서 떠오르는, 그러나 명쾌한 답이 없는 몇 가지 질문이 있다. 그들은 왜 작은 규모의 국내 시장에 굳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는 과연 글로벌 OTT 사업자와의 경쟁이 가능할까. 경쟁이 어렵다면 우리 미디어 사업자는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가. 경쟁이 가능하다면 어느 부분에서 가능한 것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 풀기 쉽지 않은 난제가 지금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khsung20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