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86>시간 위에 쌓는 혁신

시간을 조금 되돌려보면 무대는 1970년대 즈음이다. 당시 일본 기업의 혁신은 놀라웠다. 미국시장에 겨우 첫 자동차를 들고 나타난 지 얼마 안 돼 그야말로 경이롭다고 할 정도의 속도로 신차를 쏟아냈다.

구미 학자들은 이 같은 신제품 개발을 일본 기업이 쏟아 부은 개발 투자 효과라고 봤다. 일본 기업은 도전자들이었으니 이런 투자는 당연한 선택이라고 치부하곤 했다. 하지만 정작 일본 기업들은 생각만큼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 않았다. 남은 결론은 하나였다. 그들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빠르게 혁신을 해내고 있었던 셈이다.

혁신의 매개 가운데에는 흔한 것들이 있다. 너무 흔해서 그게 뭔 통로가 될까 싶다. 더더욱 이것으로 경쟁우위를 삼을 수는 없어 보인다. 과연 그럴까.

여기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사실 이 시간 위에 우리는 경영을 쌓는다. 하지만 필요할 때 내 경쟁력이 될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꽤나 잘 알려진 사례 하나로 가 보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도화선은 야마하의 공개 도전장이었다. 새 생산 라인이 완성되면 세계 최대 오토바이 기업으로 등극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혼다가 발끈한다. 혼다는 가격을 인하하고 광고를 늘린다. 이 전쟁이 시작될 때 60개 모델밖에 없었지만 18개월 만에 113개를 내놓는다. 전 제품 라인을 두 번 바꾼 셈이었다.

야마하는 이런 반격에 당황했다. 야마하도 60개 모델로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18개월 동안 겨우 37개 모델 변경에 그친다. 혼다는 더이상 예상하지 못한 한 수도 내놓는다. 혼다는 오토바이에 패션이란 개념을 붙인다. 엎친 데 덮친 격인 야마하 앞에 혼다는 4밸브 엔진, 복합소재, 기어 없는 모터까지 내놓는다.

이러고 보니 새 혼다 모델 옆에 세운 야마하 오토바이는 패션의 기초인 신선함은 차치하고 구닥다리처럼 보였다. 야마하는 딜러 가격을 원가 이하로 책정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이 전쟁의 가장 격렬한 시점에 야마하 딜러의 쇼룸에는 12개월 넘는 재고품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전쟁의 결론은 대략 세 가지였다. 첫째는 야마하의 공개 성명이었다. “우리는 이 전쟁을 끝내고 싶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경쟁은 치열하겠지만 각자의 입장과 상호인식이 바탕이 될 것입니다.”

둘째는 혼다의 경고장이었다. 이 승리가 너무도 분명하고 결정적이었던 탓에 스즈키와 가와사키 같은 다른 기업에 도전하지 말라는 분명한 메시지가 됐다.

셋째는 혼다가 번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 전쟁 기간에 혼다 역시 만만치 않은 혼란을 겪었다. 판매 서비스 망이 예전같이 돌아가는 데 시간과 투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승리가 너무도 분명했던 탓에 혼다는 회복할 만한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이 사건 후 많은 이들은 혼다의 승리 뒤에 뭐가 있었는지 물었다. 그리고 대략 이런 생각을 했던 듯하다. 시간은 기업의 자원인 동시에 성과이다. 이것은 명시적으로 관리돼야 하며, 다른 어떤 재무지표보다 더 중요한 경쟁 척도일지 모른다.

그리고 비로소 이런 이해해 도달했던 듯하다. 실상 혼다가 의도했든 아니었든 개척한 것은 시간 기반의 경쟁력이었다. 그들은 조직이 혁신을 더 빠르게 실행하는 방법을 찾았고, 그 결과 흔하디흔한 시간이란 것이 그들의 경쟁우위에 새 원천이 되었노라고. 한때 일본기업은 이 시간을 다루는 아티스트들이었다.
오늘 당신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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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