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에코파시즘

[데스크라인]에코파시즘

코로나19와 대선 이슈가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한 해였다. 열에 아홉은 올해의 토픽으로 꼽는다. 전자신문이 선정한 10대 뉴스에도 빠지지 않았다. 언론 현장도 365일 이들 뉴스와 사투를 벌였다.

그런데 한 해를 마감하면서 머릿속에 맴도는 뉴스는 따로 있다. 전자신문이 11월 15일자 1면 톱으로 보도한 기사다. '온실가스 배출량, LG 줄고 삼성 늘었다'라는 헤드라인이 붙었다. 지난 2년 동안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분석해 보니 LG는 33% 줄었는데 삼성은 17%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정부가 '탄소중립 2050 시나리오'를 선언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나와 눈길을 끌었다.

'왜?'라는 의문사가 절로 나왔다. 대한민국 1등 기업인 '관리의 삼성'이 아닌가. 지구온난화는 하루이틀 문제도 아닌데 삼성은 왜 대응이 늦었을까. 궁금증은 기사 말미에 소개됐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을 크게 늘린 게 원인이었다.

지난 10월 정부는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발표했다.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최종안을 확정했다. 기존 목표보다 13.7%포인트(P)나 높아지자 재계는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의 생산설비 신·증설 중단, 감산, 해외 이전으로 인한 연계 산업 위축, 고용 감소 등 국가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서까지 내놓았다. 'LG는 줄고 삼성은 늘었다'는 기사가 이런 우려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탄소중립은 하나의 사명이 됐다. 인류를 지키기 위한 '절대선'처럼 여겨진다. 정부도 2022년도 업무계획 역점 사업으로 내세웠다. 사회·경제 구조를 탄소중립 중심으로 대전환하겠다고 공언했다.

문제는 가치가 충돌한다는 것이다. 탄소를 줄이려면 공장 증설을 자제해야 한다. 그 결과 일자리가 줄고 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환경을 살리자고 기업과 산업을 죽여야 한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투자 확대를 요구하면서도 한편에선 탄소 배출을 제재하는 이율배반이 벌어진다.

'환경 보호'와 '고용 창출', 과연 어떤 가치가 더 상위일까. 환경 보호가 다소 먼 미래의 인류 생존 문제라면 고용 창출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다. 똑같은 생존 문제지만 지금은 '환경보호'가 우세하다. 투자와 고용 창출이 어려워진다는 재계의 아우성을 스치는 바람처럼 흘려보낼 뿐이다.

'에코파시즘'이 부활할까 두렵다. 인간을 위해 환경을 지키자는데 반대한다면 반인륜 세력으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도 이 같은 논리를 내세웠다.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구분 짓고, 강요와 폭력을 정당화했다.

'환경보호'와 '고용창출'은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인류 생존을 위해서는 꼭 실현해야 할 가치다. 대안으로 탄소를 줄이면서도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환경기술'이 거론된다. 그러나 현재 기술 수준에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재활용 소재 생산에 탄소가 더 배출되기도 한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연말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을 제재하는 방식보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혁신 아이디어를 장려하는 방식이 훨씬 건설적인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방안”이라고 꼬집었다.

'지구온난화' 논쟁은 19세기 말에 있은 '식량고갈론' 논쟁과 비슷하다. 산업화로 인구가 급증하는 반면에 칠레산 초석과 같은 천연비료 고갈로 농지가 화폐화하면서 제기된 인류 멸망설이다. 세계 과학계는 인공비료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독일 과학자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가 해답을 찾아냈다. 공기 중 질소를 암모니아로 추출하는 '공기의 연금술'이라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했다. 농업혁명이 일었고, 식량난도 순식간에 해결됐다. 탄소 감축도 결국 이 같은 획기적인 발명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 줄이라고 윽박지르고 제재하는 건 대안이 될 수 없다. '에코파시즘'보다 '에코 아이디어 경연'이 열려야 한다.

장지영 부국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