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플랫폼 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은 의료서비스 패러다임이 '진료'에서 '케어'로 이동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플랫폼 기업이 헬스케어 사업을 적극 추진하며 의료 전문가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데다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연구 인프라를 필요로 하는 젊은 의사들의 니즈도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해석이다.
경기도 대학병원 소속 한 교수는 “최근 대형병원도 예방과 케어 서비스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앞으로 큰 병원도 기존처럼 진료와 처치, 수술만으로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서비스가 예방과 케어 중심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서비스에 특화한 플랫폼 기업이 의료 전문가를 품고 병원의 경쟁상대가 될 수 있다는 예상이다.
한때 상당수 의사를 배출했던 의학전문대학원 출신이 플랫폼과 의료업계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은 이 같은 경향을 보여 주는 대표 사례다. 공학과 의학 양쪽을 전공한 이른바 '통섭형 의사'가 플랫폼과 의료계를 융합하는 '키 플레이어'로 활동하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에 소속된 한 의사는 “학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의사가 된 후 의료 인공지능 관련 연구를 계속했다”면서 “플랫폼 기업에서 연구 스케일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 후배를 보면 예전에 비해 디지털 헬스에 관심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개원이라는 선택지에 비해 스타트업 취직은 메리트가 적고 창업을 하자니 리스크가 크다”고 설명했다. 대형병원 외에 안정적으로 진료와 의료 서비스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은 디지털 엔지니어링 정점에서 선 플랫폼 기업 정도라는 것이다.
실제로 플랫폼 기업은 최근 헬스케어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각종 규제와 사회적 시선 때문에 진료라는 의료서비스 본질에 바로 진출하기보다는 공공영역, 생애전주기 건강관리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네이버는 자체 AI 서비스 클로바와 헬스케어 서비스 접목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도입한 '클로바케어콜', 자동문진 서비스 '스마트서베이', 병의원고객관리(CRM)를 연동한 AI 기반 병원 콘택트센터 '메디에어'가 대표적이다.
카카오 역시 AI 의료 솔루션을 비롯해 헬스케어데이터표준화, 모바일헬스케어서비스, 버추얼케어 등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카카오헬스케어지갑 기반 라이프사이클 관리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 장기프로젝트로 AI와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한 예측·관리 시스템과 다양한 서드파티 헬스케어 서비스·데이터 생태계 구성도 추진할 계획이다.
의료 IT업계 관계자는 “병원과 진료를 보는 임상 의사가 의료 서비스 중심인 것은 여전하겠지만 생애 전주기 헬스케어라는 측면에서는 플랫폼 등 디지털 기반 IT 기업의 역할이 날로 중요해질 것”이라면서 “이들 기업이 의료 서비스 접점을 넓히려면 전문가 역할을 할 의사는 필수”라고 말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