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76〉지방대 특성화 방향 모색

엄준철 우송정보대 부총장
엄준철 우송정보대 부총장

정부는 해마다 위험 건축물에 등급을 매긴다. 그 가운데 D나 E 등급은 심각한 결함으로, 사용이 제한되거나 붕괴 우려가 있는 건축물을 의미한다. 현재 지방대 위기가 이와 비슷하다. 지방대 위기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인구절벽, 13년째 제자리인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고등교육에 필요한 재정 투입의 어려움, 무엇보다 수도권대학 선호라는 세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위기를 가속하고 있다.

지방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교육부는 대학특성화 유형에 따라 전문화와 차별화로 방향성을 설정했다. 전문화는 비교우위가 있는 학문 분야의 전문화, 차별화는 역할과 기능 관점 차별화와 프로그램·교육방법 등 학사 운영 차별화로 각각 정책 방향을 설정했다. 대학 특성화를 위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4년제 대학을 위한 CK, 2년제 대학을 위한 SCK, PRIME사업을 전개했다. 이들 3개 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약 2조8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감사원은 3월 17일 공개한 '인구구조 변화 대응실태-대학과 지역 일자리 연계 및 일자리 창출·유지를 중심으로' 자료에서 특성화 사업 성과가 미미한 것으로 평가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특성화 사업이 여전히 정부와 대학 중심의 공급자 관점에서 출발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대학은 그동안 인적자원 유형을 고려해 일반대·산업대·전문대로 구분해 왔음에도 정책 의지보다 시장 수요에 따라 대부분 산업대는 일반대화됐고, 전문대 역시 일부를 제외하고 고등직업교육을 통한 전문 직업인 양성보다는 일반대와 유사한 학사운영을 통해 설립 목적이 퇴색됐다. 제대로 차별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산·학 협력을 위한 재정 투입이 이뤄진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또 4년제, 2년제 등 수학 연한 기준에 따르는 현재의 대학 구분도 새로운 교육 방식 등장으로 무의미해짐에 따라 연구 중심 대학과 산·학 중심 또는 직업교육 대학처럼 역할별로 분류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 예로 인구절벽에 봉착하면서 지방대 변화 중 하나는 지역산업과 연계된 학과 개설과 지원보다 당장 신입생 모집에 유리한 학과 중심으로 무리한 학과 개편과 정원 배정이 이루어진 점을 들 수 있다. 2017년 당시 전국에 반려동물학과 수는 불과 12개였는데 2021년 23개, 2022년 38개로 3배 이상 급증하면서 반려동물 돌봄 시장에서 서비스 인력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제기됐다. 동일 지역 내에서 앞다퉈 신입생 모집에 유리한 인기 학과만 개설하다 보니 모집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는 지역 내 산업 수요와 무관하게 인기 학과 중심으로 개편됐기 때문이다.

대학별 특성화 운영과 관련해 호주 TAFE대 운영시스템은 좋은 사례다. 뉴사우스웨일스(NSW)주 TAFE대는 10개 지역 130개 전문대가 홍보와 운영 측면에서 하나의 연합 대학으로 활동하면서 50만명 이상의 학생을 전공별로 특화해서 교육한다. NSW TAFE 대학은 네트워크형으로 운영되고 지역 내 캠퍼스는 분야별로 특화돼 외식조리는 A캠퍼스, 항공정비는 B캠퍼스, 호텔서비스는 C캠퍼스, 공학분야는 D캠퍼스와 같은 식이다. 지역사회 수요가 많은 학과는 일부 중복되지만 캠퍼스별 특성화는 뚜렷하다. NSW주 10개 지역 내 캠퍼스에는 메인캠퍼스가 있고, 대표 학장이 있다. 각각의 TAFE 캠퍼스는 지역산업별 수요에 따라 특성화됐기 때문에 학생 모집을 공동으로 하지만 더욱 우수한 자원을 유치하기 위해 캠퍼스별로 활발하게 신입생 모집 활동을 하기도 한다. 산·학 협력도 기업 수요와 캠퍼스별 특성을 고려해 재직자훈련, 위탁훈련, 주문식교육 등 실질적 협력이 이뤄져서 협력 효과성과 교육 생산성이 높고 지역 내 캠퍼스 간 갈등은 적어지는 구조이다. 시스템은 단순해 보이지만 효과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는 지방대 행·재정적 권한을 지자체에 위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방대에 대한 지자체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이다. 만약 지자체가 이러한 권한을 이양받았을 때 호주 TAFE대처럼 지역산업 수요와 연계된 업종별·직군별 특성화 시스템을 추진한다면 위기에 빠진 지방대를 살릴 수 있는 동시에 재정투자 가성비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와 함께 산·학 협력이라는 획일화된 표현 이외에 생활 산업서비스, 의료서비스, 사회복지 친화형과 같은 영역별 산·학 협력 모델을 구체화해서 다양성을 살린다면 지역사회의 관심과 참여도를 제고해 대학별 특성화가 실용적으로 확산할 것으로 기대한다.

엄준철 우송정보대 부총장 joon21@ws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