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수소전기 지게차를 개발하고도 규제에 막혀 1년 가까이 실증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울산 수소그린모빌리티 규제자유특구에서 현대글로비스를 통해 실증할 계획이었으나 양산 체제 수준의 높은 인증검사가 조건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모래주머니' 같은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밝혔지만 기업 현장은 아직도 규제로 발목이 묶여 있다.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현대건설기계가 공동 개발한 수소전기 지게차가 실증사업에 투입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울산 규제특구에서 협력사가 함께 참여하는 필드 실증을 추진했지만 강화된 인증 요건을 부여받으며 착수하지 못했다. 빨라야 올 10월에야 특구 실증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소전기 지게차는 현대가 세계 최초로 양산한 95㎾급 수소연료전지 기반으로 개발됐다. 현대모비스가 수소전기 지게차 적용을 위해 별도로 50㎾급 수소연료전지 파워팩을 만들었다.
자동차는 수소차를 포함해 제조사가 실증하는 자가 인증 제도를 따른다. 자동차를 제외한 수소연료전지 모빌리티나 건설기계는 수소법에 따라 한국가스안전공사가 담당하는 용품검사를 필히 받아야 한다. 울산 규제자유특구는 지난해 실증 단계부터 현대차그룹에 운용 안전성 확보를 위해 KS 인증을 요구했다. 올해 초에는 수소법이 개정되면서 KC 인증이 필요해졌고, 현대차그룹이 관련 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
문제는 KS, KC 인증 모두 양산 수준 체계를 갖춰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소요 시간도 길어서 신사업을 위한 '실증→제품 고도화→사업화' 과정이 지연될 수 있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2023년 수소전기 지게차를 상용화할 계획이었으나 현재 속도로 상품성 개선 과정을 밟으려면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는 사업화 단계에서는 안전을 고려해 높은 수준 인증이 필요하지만 실증 단계부터 적용하기엔 과도한 규제라고 지적한다.
울산 수소그린모빌리티 규제자유특구는 수소법에 근거해서 수소전기 지게차 운용으로 인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부대조건을 부여했다는 입장이다. '산업안전보건법(84조)'에 따른 수소전기 지게차에 대한 안전 인증 기준이 없어 KC인증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사업 관련 덩어리 규제를 패키지로 완화한다는 규제특구 제도 취지를 고려하면 부대조건이 과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그나마 현대차그룹은 수소전기 자동차를 양산한 업체이기 때문에 인증 절차를 밟는 게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이라면 사실상 통과가 어렵다.
수소연료전지뿐만 아니라 수소추출설비, 수전해설비 등도 수소법에 따른 수소용품으로 분류돼 가스안전공사로부터 용품검사를 받아서 인증을 획득해야 한다. 수소용품을 직접 시험하거나 R&D 하는 경우에는 용품검사를 생략할 수 있으나 다른 업체와 협업해서 실증할 경우 제외된다. 수입한 수소용품도 포함한다. 가스안전공사 관계자는 “규제특구의 요청이 있어야 실증 단계에서 (인증이 아닌) 부분적 검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관협의체 수소융합얼라이언스 관계자는 “수소법이 가스안전공사로부터 강제인증을 받도록 규정하면서 사업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수소 기술개발과 사업화가 늦어지는 문제를 막기 위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규제특구 지정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수소전기 지게차가 첫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한 물류 운반 기계라는 점에서 인증이 요구된 것”이라며 “안전기준을 담당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소관부처 고용노동부와 지속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진형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