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디지털 창세기]〈9〉디지털시대, 가족의 창조

[이상직 변호사의 디지털 창세기]〈9〉디지털시대, 가족의 창조

어린 시절 실수로 이웃집 감나무를 부러뜨렸다. 주인이 항의하자 할머니는 어린 아이가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며 크게 싸우셨다. 나는 속으로 내 잘못인데 왜 저러실까 할머니를 부끄러워했다. 나중에 할머니가 음식을 싸 들고 이웃집에 가 사과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싸우실 땐 어린 손주가 기가 죽을까봐 그러셨다고 한다. 지금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 내 편을 들어 줄 사람이 있을까. 할머니가 그립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헤어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마지막까지 나를 보호해 줄 인프라가 돼주는 바로 그것이 가족이다.

디지털 시대 결혼율과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노동과 수요의 감소고 대한민국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 시대에 결핍, 불안, 소외와 두려움에 가득한 인간을 지켜줄 마지막 인프라 '가족'이 없어지는 것이다. 화려한 '싱글'을 떠들지만 가족이 없다면 위기에 처했을 때 의지할 곳이 없다. 가족이라는 마지막 인프라를 이용할 수 없다.

왕조 계급사회에서 가족은 가문의 유지를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농경사회에선 노동력 취급을 당했다. 산업화시대엔 산업발전을 위해 아버지를 국가에 내줘야 했다. 아버지는 돈을 벌어준다는 명목으로 집에서 왕으로 군림했다. 돈을 벌지 못하는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존재 이유를 상실했고 가족의 배척을 받았다. 아버지는 직장에서 쫓겨나도 가족에 알리지 못하고 양복을 입고 공원을 전전했다. 아버지는 반드시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어야만 할까. 그것이 옳은 가족일까.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가족과 상의하고 함께 살 궁리를 하는 사람이 진정한 가장이고 아버지가 아닐까. 가족은 일터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쉬게 하고 재충전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아버지의 휴식을 위해 이웃과 소통도 단절했다. 휴식을 해야 다음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과 소통하지 않는 아파트의 양상이 그것을 대변한다. 우리는 산업화를 달성했고 돈을 많이 벌어오는 아버지가 증가했지만 가족 갈등은 줄지 않았다. 가족을 유지하는 것이 돈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마주 보면서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대화한다. 집안에서도 온라인 접속이 증가했고 가족 소통 기회가 줄었다. 주제를 공유할 수 없는 관계가 되고 있다. 손쉬운 소통을 추구하고 쉽게 잇고 끊을 수 있는 외적 관계를 선호하고 있다.

옛날 회사는 실력이 없어도 인성과 끈기가 있으면 채용해 가르쳐 썼다. 한번 직장은 평생 다닐 직장이었다. 직원은 회사에 충성했다. 지금은 아니다. 실력과 경력을 갖춘 사람만 채용하고 가치가 다하면 버린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몰입하다보니 가족과 더 소원해지고 직장이 그를 버리는 순간 돌아갈 가족이 없다.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 대부분 가족이 겪는 현실이다. 그런 의미라면 우리 사회는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줄 공동체로서 마지막 인프라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를 지켜줄 마지막 인프라로서 가족의 발명이 필요하다.

필자가 최근에 쓴 책 '우리 엄마 착한 마음 갖게 해주세요' 는 오래전 아이들의 기발한 생각과 행동을 기록한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평생을 찾아야 할 진정한 가족의 창조와 발명을 위해 썼다. 늙어가는 아내와 부쩍 커진 아이들의 눈을 직시하고 나의 가족을 발명하고자 한다. 당연한 것으로 알았고 언제나 기다려 주리라 믿었던 그 가족은 애초에 없다. 회사를 위해 불살랐던 그 진심을 갖고 소홀했던 가족을 다시 창조하고 발명해야 디지털시대 우리의 미래가 있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