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의 유예를 두고 여야가 재차 협상에 나섰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요구해온 산업안전보건청을 국민의힘이 산업안전보건지원청으로 바꿔 2년 후 설치로 역제안했으나 최종 거부했다. 총선을 앞두고 주도권 다툼과 맞물려 첨예한 대립국면이 지속될 전망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일 본회의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 직후 “민주당은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의 생명·안전이 더 우선한다는 기본 가치에 더 충실하기로 했다”며“정부·여당의 제안(중처법 2년 재유예와 산업안전보건지원청 설치)을 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현재 그대로 시행되는 거로 결론 내렸다”고 덧붙였다.
당초 이날 오전 정부·여당의 제안에 야당 원내지도부가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오후에 열릴 본회의에 앞서 극적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 오후 2시에 예정됐던 본회의 시간도 2시간여 미뤄지면서 협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전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산업안전보건청' 대신 '산업안전보건지원청'이라는 명칭으로, 최종 협상안을 제시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날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이 많아 결국 협상은 무산됐다.
윤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반대로 협상이 불발된 데 대해 “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의 눈치를 본다고 밖에 볼 수 없다”며 “민생현장의 절절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800만 근로자와 83만 중소기업, 또 영세사업자들의 눈물을 외면한 민주당의 비정함과 몰인정함에 대해서 국민이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이날 다른 협상의 조건도 추가로 내걸지 않았다. 윤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정부와 함께 민생 현장에서 사고가 나지 않는 조치와 법적인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릴 수 있는 방안을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도 이례적으로 즉각 반발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정부여당이 중소기업과 영세상공인들의 어려움을 감안하고, 절박한 사정을 고려해 유예를 숙고한 부분이 있다”며 “민주당이 끝내 이를 외면한 것에 대단히 유감”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계는 매우 안타깝다며 이달 임시국회에서라도 처리를 호소했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18개 중기단체는 “오늘 법안처리가 무산되면서 83만이 넘는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예비 범법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게 됐다”면서 “남은 2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이 다시 논의되어 처리되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여야는 협상이후 본회의를 열고 그간 계류된 민생법안을 처리했다. 메타버스 산업 진흥을 위한 각종 지원 근거가 담긴 '가상융합산업진흥법'(제정안)을 비롯해 국가 연구개발(R&D) 과제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 제고를 위한 국가연구개발 혁신법,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의 대상자 제한을 폐지하는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법 개정안', 레벨 4 이상의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해 성능인증제와 적합성 승인제를 도입하는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 촉진 및 지원법' 등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발의한 하천 내 불법행위 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하천법 개정안, 현행 500만 원이 고향사랑기부금의 개인별 연간 상한액을 내년부터 2000만 원으로 올리는 고향사랑 기부금법 개정안등도 통과됐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