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국가경쟁력의 새로운 중심축, 딥테크 중심 국가로 가는 길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OECD 국가 혁신기업 현황

경제 안보와 기술패권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딥테크 육성이 국가 경쟁력 중심축으로 새롭게 부상하면서 혁신 선도국은 '딥테크 국가(Deep Tech Nation)'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일례로 유럽연합(EU)은 기술패권전략으로 딥테크 혁신을 선언하고 투자를 연평균 49% 이상 확대해 450억유로 딥테크 스타트업 성장 가속화 자금 투입과 딥테크 혁신밸리 100개 육성, 딥테크 인재 100만명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스위스는 'Deep Tech Nation 스위스 기구'를 설립하고 10년 동안 80조원을 딥테크 스타트업 성장에 지원해 딥테크 혁신 1위 국가를 목표로 매진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경제사회 체질 개선 지연으로 저성장 정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국가 재도약을 위한 신성장 전략이 절실한 변혁기에 처해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혁신정책 리뷰(2023년)'에서 혁신기업 수와 혁신기업 고용이 OECD 국가 중 최하위 그룹으로 기업 혁신성이 심각한 점을 지적했다.

OECD의 '한국의 혁신정책 리뷰(2023년)'. 한국은 혁신기업 수와 혁신기업의 고용 분야에서 OECD 국가 중 최하위그룹에 속했다. OECD REVIEWS OF INNOVATION POLICY: KOREA 2023
OECD의 '한국의 혁신정책 리뷰(2023년)'. 한국은 혁신기업 수와 혁신기업의 고용 분야에서 OECD 국가 중 최하위그룹에 속했다. OECD REVIEWS OF INNOVATION POLICY: KOREA 2023

한국 생산성 국제경쟁력은 54위이며(IMD, 2023년), 맥킨지는 '코리아 2023 레포트'에서 새로운 성장모델(next S-Curve)을 창출해 끓는 물 속 개구리를 냄비 밖으로 꺼내는 과감한 시도와 변화를 주문했다.

결국 도전과 기회가 공존하는 갈림길에 선 한국은 또 다른 추월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과거 해결책이 '추격'이었다면 딥테크 혁신경제 대전환기에 있는 지금 해결책은 '선도'이며, 그 중심축은 딥테크 국가로의 전환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산업 패러다임 전환을 끌어낼 수 있는 딥테크 챔피언들을 협력생태계에서 집중 육성해 신성장 동력화하는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딥테크 상위 500위 기업 가운데 한국 기업은 매우 적어(1%, 글로벌 19위) 딥테크에 투자하는 비중을 미국(19%), 이스라엘(20%) 수준으로 대폭 확충하고, 집중화된 메가클러스터를 조성해 성장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럽 딥테크 유니콘은 모두 딥테크 허브에 소재하고 있다.

글로벌 딥테크 상위 500위 기업 가운데 한국 기업은 1% 비중을 차지하며 글로벌 19위에 머물러 있다. Deep Tech Index 2023
글로벌 딥테크 상위 500위 기업 가운데 한국 기업은 1% 비중을 차지하며 글로벌 19위에 머물러 있다. Deep Tech Index 2023

둘째, 긴 개발기간과 많은 소요 비용 등 기술과 시장 이중 위험이 큰 딥테크 특성에 적합한 새로운 창업 사업화 경로를 재설계하고, 기존 제도 틀을 넘는 혁신적이고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일본은 각 부처 연구개발(R&D) 예산 중 일정 비율을 R&D형 스타트업에 투자하도록 목표를 설정했고, 유럽혁신위원회(EIC)는 딥테크 스타트업 대상으로 기초연구(TRL1)부터 실증, 양산화(TRL9)까지 단계별로 지원하는 유럽혁신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도 범부처 차원에서 딥테크 스타트업 전용 전주기 지원사업을 대폭 확충해 경제적·사회적 임팩트를 실현하는 과정까지 이어지도록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이와 연계해 정부는 공공 혁신조달을 획기적으로 확대해 딥테크 초기시장을 열어줘야 한다. 유럽은 상용화 전 R&D 연계 혁신조달로 참여 스타트업 86%가 상용화 성공과 55% 이상이 투자유치나 기업 인수 성과를 내고 있다.

셋째, 정책금융은 높은 자본지출과 10~15년 이상 지원이 필요한 딥테크에 적합한 펀드 구조로 개편해 운용 기간과 규모를 대폭 확대하고, 모험성과 도전성을 강화해야 한다. 전통적 선형 벤처 단계투자 프로세스 자금조달 모델과 주기는 딥테크 스타트업 고유 요구사항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수의 확대에서 규모의 확대로 투자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딥테크 특화 펀드는 최소 1억5000억~3억달러 규모가 필요하다(BCG, 2021). 정부 주도 정책금융만으로는 절대 부족하므로 사상 최대 기업 사내 유보금을 과감하게 기업 벤처캐피털(CVC)로 재투자하도록 유인책이 요구된다.

세제나 규제를 대폭 개선해 CVC 비중이 미국, 일본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는 현상이 조속히 개선되길 바란다.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노력 외에도 CVC, 외국인 투자 비중 확대를 기반으로 한 자본 원천 다각화를 통해 GDP 대비 자본 증대량을 현재 대비 2배 수준으로 성장시켜 딥테크 투자생태계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넷째, 딥테크 스타트업의 강력한 보호 수단은 특허다. 고품질 특허가 창출되고 원활하게 활용될 수 있는 환경이 관건이다.

한국 지식재산 집약산업은 GDP의 37.2%, 고용창출의 19.6%를 기여하고 있어 선도국과 비슷하나 임금 프리미엄은 6~7배나 낮고, 지식재산 활용 소득 세제도 매우 취약하다. 우수 인재가 지속 유입되려면 직무발명보상 비과세와 지식재산 이전세 대폭 감면이 필요하다. 지난해 기준 지식재산금융은 전체 기술금융의 1.9%, 지식재산 직접투자펀드는 1.7%에 불과하므로 대폭 확충해 딥테크 패권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끝으로 딥테크 혁신기업 탄생과 성장을 막을 수 있는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 정부의 가장 시급한 임무라 할 수 있다. 특히 딥테크는 규제의존도가 높은 융합 신산업으로 복합규제가 많아 시장진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향후 신설 또는 개정 법령부터는 미국, 중국과 같이 네거티브체계로 전환해 금지하지 않으면 실행할 수 있는 보편 룰을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100대 디지털헬스케어 분야와 기후기술분야 스타트업이 한국에서 사업할 경우 60~75%는 불가능하거나 곤란하다고 한다. 규제도 혁신성장을 위한 수단인 만큼 기술 발전과 발맞춰 혁신을 견인하는 규제 틀과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일본이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해 외국인 창업 규제를 전격적으로 풀어 창업 1년 만에 사카나 AI라는 유니콘이 창출되는 환경을 만든 것이 부러울 따름이다.

15세기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당시 패권국가는 여전히 강대국 위치에 있다. 제2의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있는 대전환의 시기에 한국호가 나가야 할 방향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딥테크 기술사업화에 국력을 총동원해 딥테크 혁신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길이다.


최치호 한국과학기술지주(KST) 대표 chchoi@kstholdings.co.kr

최치호 한국과학기술지주(KST) 대표
최치호 한국과학기술지주(KST) 대표

〈필자〉최치호 대표는 2014년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기술사업단장과 서울홍릉강소특구단장을 역임했다. 2017~2020년에는 한국연구소 기술이전협회(KARIT) 회장을 지내며 공공기술 이전 및 사업화 전문가로 평가된다. 2010~2017년에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지식재산전문위원회 위원, 국가과학기술심의회 평가전문위원회 위원과 정책조정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관련 정책 강화에도 기여했다. 2023년 4월부터 한국과학기술지주(KST) 대표직을 맡고 있으며, 지난해 3월부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글로벌 R&D 특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