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바이오파운드리 시대, 데이터 플랫폼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권석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
권석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

최근 글로벌 바이오 산업은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과거 연구자의 직관과 오랜 반복 실험에 의존하던 전통적인 바이오 연구개발(R&D) 방식은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빅데이터가 결합된 '디지털 바이오'로 급속히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의 중심이자 차세대 국가 바이오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인프라로 '바이오파운드리(Biofoundry)'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바이오파운드리는 생명공학 기술에 자동화 및 공학적 원리를 도입해 미생물, 동물 세포 등을 마치 반도체나 자동차를 생산하듯 초고속, 대량으로 설계·제작·테스트하는 첨단 R&D 및 제조 플랫폼이다.

기존에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던 R&D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실패 확률을 최소화할 수 있어 미래 바이오 경제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바이오파운드리를 국가 전략 기술로 지정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기술 패권 경쟁에 돌입했다. 미국의 경우 '국가 바이오기술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를 통해 바이오파운드리 인프라 확충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자국 내 바이오 제조 역량을 극대화하고 있다.

영국과 중국 역시 국가 주도의 대규모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해 글로벌 기술 표준을 선점하고자 각축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국가적 차원의 국가바이오파운드리 구축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으며, 우리 사업단 역시 첨단 인프라 조성과 핵심 융합 기술 개발에 매진하며 한국형 바이오파운드리의 초석을 다지는 가시적인 연구성과를 창출해 나가고 있다.

◇바이오파운드리의 본질은 데이터

우리가 바이오파운드리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핵심 전제가 있다. 바이오파운드리의 본질을 단순히 '최신 자동화 하드웨어(HW) 장비의 집합체'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로봇 팔이 연구자를 대신해 실험을 하고, 24시간 쉬지 않고 자동화 배양기를 돌리는 물리적 자동화는 바이오파운드리가 가진 겉모습의 일부일 뿐이다. 바이오파운드리의 진정한 가치와 차별화된 경쟁력은 바로 그 자동화 공정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고품질의 바이오 데이터(Bio-Data)'에 있다.

AI가 새로운 단백질 구조를 정확하게 설계하고 최적의 대사 경로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학습할 수 있는 방대하고 정형화된 고품질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아무리 뛰어난 AI 모델과 알고리즘을 갖추고 있더라도, 현장의 실험에서 생성되는 데이터의 신뢰성과 일관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결국 '가비지 인, 가비지 아웃(Garbage In, Garbage Out)'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철저하게 통제되고 검증된 양질의 데이터를 대량으로, 그리고 연속적으로 생산해 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바이오파운드리의 존재 이유다.

데이터·플랫폼 기반 바이오파운드리 개요 (AI 생성 이미지)
데이터·플랫폼 기반 바이오파운드리 개요 (AI 생성 이미지)

◇IT 통합 플랫폼, 바이오파운드리의 두뇌

이러한 고품질 바이오 데이터를 확보하고, 진정한 의미의 무인화·지능형 바이오파운드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IT 통합 운영 플랫폼'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현재 바이오 실험실에서 사용되는 수많은 첨단 장비들은 제조사마다 각기 다른 통신 규격과 데이터 포맷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파편화되고 고립된 장비들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모아둔다고 해서 효율적인 유기적 자동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장비 간의 언어를 통일하고, 단절된 공정들을 매끄럽게 연결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작동하게 만드는 소프트웨어(SW)적 연결망, 즉 IT 기반의 통합 플랫폼이 굳건하게 뒷받침돼야 한다.

이 통합 플랫폼은 단순한 HW의 제어와 작업 스케줄링을 넘어, 기획, 설계(Design), 제작(Build), 시험(Test), 학습(Learn)으로 이어지는 'DBTL 사이클' 전반의 모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표준화하고 중앙 데이터베이스(DB)에 축적하는 중추 신경망 역할을 수행한다. 데이터를 생성하는 순간부터 규격화된 메타데이터를 부여하고, AI가 즉각적으로 분석하고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해 제공하는 이 플랫폼이야말로 바이오파운드리의 '두뇌'이자 가장 중요한 핵심 지적 자산이다.

◇데이터 표준화와 플랫폼 주권 확보

데이터와 IT플랫폼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합의된 표준화된 데이터 형식과 SW 아키텍처 설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표준화의 공백이 존재한다. 이는 각자의 바이오파운드리가 독립적으로 개발되고 장비, 실험 및 연구목적에 맞는 데이터 표준을 채택해 왔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자들은 글로벌 선도 바이오파운드리와 협력을 통해 바이오파운드리 워크플로(자동화된 실험절차)와 오퍼레이션(개별 장비 운영)을 정의하기 위한 추상화 계층구조를 제안했다.

글로벌 기술 표준에 부합하면서도 국내 연구 환경에 최적화된 독자적인 IT 통합 플랫폼의 프로토타입을 실증함으로써, 외산 HW 플랫폼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고유한 바이오 데이터 자산을 축적해 갈 수 있다.

◇대한민국 바이오 경쟁력의 새로운 승부처

디지털 대전환의 거대한 파도는 이미 바이오 산업 전반을 빠르게 뒤덮고 있다. 고품질의 바이오 데이터와 이를 완벽하게 관장하는 강력한 IT 통합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지능형 바이오파운드리'의 선제적 구축은 대한민국이 다가올 글로벌 바이오 경제 시대에 대비하는 강력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

우리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 역량과 정밀 제조 기술력을 바이오 R&D에 성공적으로 접목한다면, 차세대 글로벌 바이오 기술 패권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추격자(Fast Follower)를 넘어 선도자(First Mover) 위치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 굳게 확신한다.

권석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 sykwon@kribb.re.kr

〈필자〉 서울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입사해 30년 이상 연구와 조직 운영을 함께 수행해 온 연구자 출신 기관장이다. 유전체 해독 및 분석에 관한 연구로 학문적 성과를 축적하였으며,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를 통해 기술 실용화에 기여한 연구자다. 조직 운영 경험도 두루 갖췄다. 식물유전체연구센터장, 식물시스템공학연구센터장, 기술사업화센터장, 융합생물소재연구부장, 부원장 등을 역임하며 R&D와 기술사업화, 조직 경영을 폭넓게 경험했다. 국가 바이오 정책 기획과 자문에도 참여하며 첨단바이오 분야 정책 수립과 연구 생태계 조성에 기여했으며, 과학기술진흥 유공 장관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으로서 연구 현장 중심 혁신과 개방형 협력, AI 기반 디지털 바이오 전환을 이끌며 국가 바이오 연구 생태계 고도화와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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