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바이오 관세 폭탄'…국내 중소 CMO 직격탄 …“가격 경쟁력↓·고객사 이탈 우려”

의약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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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비상에 걸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 혜택을 받아온 국산 의약품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다. 대형 제약사들과 장기 계약을 맺고 있거나 미국 내 생산 거점을 확보한 대기업들은 대응이 가능하지만, 중소 위탁생산(CMO) 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일라이릴리, 머크, 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업체 최고경영자(CEO)들과 비공개 회의를 갖고 미국 이외 지역에서 생산되는 의약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생산 기지를 미국으로 이전하면 관세가 없다며 협상 여지도 남겼다. 이 같은 조치가 현실화하면 국내 CMO에서 생산한 의약품 수출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대응방식과 입장 차이가 크다. 미국 내 생산 거점을 확보한 대기업들은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SK바이오팜은 “미국 내 CMO 시설을 이미 확보해 필요 시 즉시 생산이 가능하고, 관세 정책 변화에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이미 갖췄다”며 “미국 내 약 6개월 분의 물량을 사전에 확보하고 있어 관세 변화 대응에 소요되는 기간 동안은 이 물량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는 한국에서 원료의약품(API)을 생산한 후, 캐나다에서 벌크 태블릿 및 패키징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이를 미국 CMO로 즉시 바꿔 관세에 대응할 수 있다.

셀트리온 역시 “관세 리스크 발생 이전부터 세 부담이 훨씬 낮은 원료의약품 수출에 집중하고 현지 CMO 업체를 통해 완제의약품을 생산해오고 있다. 추가 생산 가능 물량도 확보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중소 CMO는 계약 축소, 고객사 이탈, 가격 경쟁력 약화 등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국내 CMO에서 생산한 의약품의 수출 가격이 급등하면 미국 제약사는 관세가 저렴한 국가의 CMO로 발주처를 변경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중소 CMO는 에스티팜, 유한화학, 바이넥스 등이 있다. 이들은 향후 대응방안을 고심하는 중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미국 바이오 기업들과 계약 비중이 높은 중소 CMO들의 타격이 클 전망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위기를 감지한 중소 CMO의 사장이 트럼프 관세 언급에 급하게 찾아와 미팅을 요청했다”라며 “향후 고객사 이탈이 우려되고,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 돌파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미국 생산 거점 확보가 어려운 것도 문제다. 당장 미국 내 공장을 설립하려 해도 FDA의 cGMP(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신규 인증에는 최소 2~3년이 걸린다. 사실상 단기간 내 미국 시장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미국 내 생산 거점이 없으면 관세 부담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더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자동차는 큰 기업이 한두 개이지만, 바이오는 다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각 기업의 목소리를 빠르게 듣고 다각적 접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중소 CMO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관세로 불거진 외교통상 문제는 단기적 부분이고, 향후 중장기 전략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송혜영 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