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7세 고시'를 심각한 아동학대로 규정해 달라는 진정이 16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됐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유명 영어학원에 다니기 위한 입학시험을 일컫는 7세 고시라는 말은 우리 사교육 시장의 슬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은 “친구들을 학원에서 구출해 달라”고 호소했다. 기성세대와 교육 당국은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수록 많은 교육 공약이 쏟아질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입 정시 비율 강화, 고교학점제 폐지, 기초학력 전수평가 부활, 자사고 등 고교 유형 다양화 등을 내걸었다. 그 전 문재인 대통령도 공교육 비용 국가책임 강화, 외고·자사고·국제고 일반고로 단계적 전환, 수능 절대평가 추진, 자유학기제 확대, 사학비리 근절 등을 공약했다. 파격적이거나 꼭 필요한 공약도 많았지만, 얼마나 지켜졌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재탕, 삼탕의 교육 공약이 반복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는 지쳐갈 것이다. 7세 고시에 이어 유명 영어유치원 입학을 위한 '4세 고시'까지 등장했다. 이제는 단편적인 처방이 아닌 근본적인 '교육 대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더 이상 교육을 정치적 구호나 관료적 숫자놀음의 대상이 아닌, 국가의 생존과 미래 세대의 삶을 위한 가장 시급한 개혁의 영역으로 다뤄야 한다.
가장 뿌리 깊은 문제는 '대학 서열 중심 사회'다. 대학 입학이 인생의 전부처럼 여겨지다 보니 초등학생까지 입시 스펙을 고민한다. 학교는 '시험 훈련소'가 되었고, 교육의 목적은 줄 세우기와 경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 처참한 현실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대입제도의 본질적 개편이 불가피하다. 수능과 내신 중심의 선발 구조를 넘어, 역량 중심·과정 중심 평가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입시가 삶을 좌우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사교육의 악순환은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 수백~수천만 원짜리 컨설팅과 과외는 공교육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지방과 서민층을 경쟁의 출발선에서부터 밀어낸다. 지역과 계층에 관계없이 고품질 교육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한다. 사교육을 억제할 것이 아니라, 공교육이 그것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질적인 혁신을 해야 한다. 공교육이 '싸고 낮은 수준의 교육'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변화는 없다.
![[에듀플러스]〈칼럼〉'교육 대전환'이 필요하다](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5/04/22/news-p.v1.20250422.8e06a803aad44f19b5410f3961ec6a38_P1.png)
이와 맞물려 고용 구조 역시 바뀌어야 한다. 학벌 중심 채용이 계속되는 한 아무리 교육제도·입시제도를 바꿔도 사회는 달라지지 않는다. 직무 중심 채용 확대, 실무 능력 평가 강화, 다양한 경로로 성장할 수 있는 열린 채용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지금처럼 '좋은 대학=좋은 직장' 등식이 확실한 사회에서는 고등교육도, 직업교육도 제자리를 찾을 수 없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 정책도 교육과 같이 가야만 한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학교가 보육과 교육을 풀서비스 해야 한다. 고용당국과 교육당국이 합쳐져서 교육을 받은 후에는 반드시 취업으로 이어지도록 해줘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게 된다. 아울러 출산하면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대선 때 국민의 동의를 얻어서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를 합치고 지방정부와 긴밀히 협력해서 교육과 직업이 일치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결혼과 출산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아이 난다고 돈 몇 푼 주는 정책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근본적으로 교육의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가 다시 '사람을 키우는 곳'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이다. 입시 스트레스와 비교 경쟁 속에서 학생들의 정신 건강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자살률 세계 1위, 행복 지수 최하위라는 결과는 교육 실패의 사회적 경고다. 교육은 지식 전달이 아니라 '좋은 삶'을 위한 준비여야 한다. 학생 상담, 진로 탐색, 또래 관계 형성 등 정서적·사회적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음 대통령은 이 고질적인 문제를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입시제도 하나 고치는 '정책'이 아니라 교육의 방향을 근본부터 다시 세우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책임진다는 비전과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교육은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 다음 대통령은 그 진실을 가장 먼저, 그리고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대영 한국교과서협회 이사장 edubbang@naver.com
◆이대영 한국교과서협회 이사장 =성동고·구정고·금옥여고 등 다수 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한 데 이어,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과 장학사와 학교혁신담당 팀장, 교육과학기술부 대변인, 서울특별시부교육감(교육감권한대행), 서초고등학교장, 국립공주대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