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쪽으로 치우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한 쪽'으로 치우지지 않음은, 또 다른 '한 쪽'이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 고전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2장에서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 하여, 있음(有)과 없음(無)이 서로 의존하고 상호작용하며 존재한다는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있음과 없음은 단순한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므로, 치우침을 경계하고 균형과 조화를 추구해야 함을 가르친다.
자사(子思)의 중용(中庸)은 불편불의 무과불급(不偏不倚 無過不及)이라는 말로 더욱 정확하게 설명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中),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은 균형 잡힌 상태를 의미하며, 이러한 상태가 항상 변함없이 유지되는 보편적인 도리(道理)로서 일상적인 삶 속에서 실천(庸)해야 할 마땅한 이치를 뜻한다.
최저임금제도, 현금지원, 의료개혁 등이 갖는 문제의 원인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한 쪽'만 보고 다른 '한 쪽'을 무시한 잘못이다. 그리고 극단을 피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보편적 도리'에 대해서 무지한 것은 더욱 중요한 잘못이다. 여기서 예시한 행정(行政)의 예시(例示)뿐만 아니라, 폭주하고 있는 입법(立法) 독재와 한 가지 사건에 대해 상반되는 판결을 선고하는 사법(司法) 시스템의 붕괴라는 문제의 원인도 마치 한가지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 왔던 보편적인 도리가 사라졌다. 과거의 그것은 우리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나라를 선진국 반열로 이끌었던 그것이 사라졌다. 이제 우리는 산업사회, 국제화를 거쳐 인공지능(AI) 시대에 사회를 안정적으로 지탱하고 대한민국을 강건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우리만의 주체적인 보편적인 도리를 세워야 할 때다.
'보편적인 도리'란 무엇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에 따라 세상은 항상 변하면서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진리(眞理) 아래에서, 노자(老子)가 말하는 무위(無爲)에 따라 자연의 섭리(攝理)에 순응해 욕망과 작위적인 노력을 절제하면서, 자사(子思)가 말하는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은 균형 잡힌 상태를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道)를 어찌 말로 다 하겠는가. 그저 세상을 통해서 끝없이 듣고 보고 겪으면서 내면에 쌓아감(축(畜))으로써 덕(德)을 이룰 뿐이다.
기원전 4세기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던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전(田)씨 제(齊)나라는 도성의 직문(稷門) 아래 직하학궁(稷下學宮)을 세우고, 천하의 인재들을 불러들여 저술과 이론 활동을 하게 하였다. 직하선생들은 자유롭게 정치를 의론할 수 있었고 심지어 정부와 군주를 비판하는 것을 정부와 군주로부터 보장받았다. 이를 통해 학궁에서는 백가쟁명(百家爭鳴)하면서 백화제방(百花齊放)이라는 번영을 이루었다.
보편적 도리를 벗어난 극단적 사상은 건강한 비판과 견제 없이 특정 주장이 맹목적으로 수용되기 때문이다. 언론, 학계, 시민 사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토론할 수 있는 강건한 플랫폼과 문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극단적인 사상은 비전문적인 선동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확산된다. 과학적 근거와 합리적인 논리를 제시하는 지식인과 전문가의 역할을 강화하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아가, 극단적인 사상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심화시킨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공통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사회 통합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어느 계층도 배제하지 않으며, 사회 전체의 조화로운 발전을 추구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강우 동국대 컴퓨터AI학부 교수 klee@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