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인구 구조는 더 이상 '피라미드형'이 아니다. 2023년 기준 주민등록 인구는 약 5133만명이다. 인구 비중은 50대(16.94%)와 40대(15.44%)가 가장 크다. 60대(14.87%), 30대(12.81%), 70대 이상(12.31%), 20대(12.07%)가 뒤를 잇는다. 이 통계가 말해주는 건 명확하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방향을 결정짓는 인구 집단은 86세대와 97세대다.

86세대는 80년대 학번, 60년대생으로, 1987년 민주화 운동을 이끈 주체다. 권위주의 정권에 맞선 이념과 투쟁의 기억을 가진 이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시민운동, 정치, 언론, 교육 등 사회 전반에 뿌리를 내리며 권력을 내면화했다. 97세대는 그 뒤를 잇는 70년대생으로,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서 성인기를 맞았다. 특히 구조조정·비정규직 증가·고용불안 등의 현실에 직면하며 제도권 편입에 집착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이 두 세대는 오늘날 우리 정치와 사회, 경제의 실질적 기획자이자 결정권자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수치로 확인된다. 60대 이상 투표율은 87.6%, 50대는 81.4%였다. 반면 20대는 71.0%, 30대는 70.7%에 그쳤다. 민주주의는 투표함 앞의 숫자 싸움이다. 더 많이, 더 자주 투표하는 세대가 정치의 중심을 차지한다. 정치권이 86·97세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90년대생 이후 청년세대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선진국 문턱을 넘어선 이후 태어나고 성장했다. 고도성장의 고통과 분단의 위협보다는 고학력 경쟁, 청년실업, 주거 불안, 기회의 불균형 속에서 학창 시절과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민주주의는 당연했고, 인터넷은 기본값이었으며, '공정'은 자명한 원칙이었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그 자명한 것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했다.
기성세대가 '이만하면 잘살게 됐다'고 생각할 때, 청년세대는 '이만한데 왜 이렇게 힘든가'라고 되묻는다. 이 질문이 정치로 연결되기 위해선, 제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하지만 지금 청년은 투표장보다 타임라인에서 더 오래 머문다. SNS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넘어선 복잡한 정체성과 고민이 분출되지만, 그 복잡성은 현실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표로 전환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금개혁을 보자. 청년세대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떠안으며 보험료율 인상과 수급 연령 상향을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연금 기금은 2050년을 전후로 고갈이 예측된다. 지금 20대는 40년 가까이 기금을 납입하고도 수령 여부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세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연금개혁 논의는 대부분 현재 수급자 또는 곧 수급자가 될 기성세대 입장에서 설계된다. 이는 숫자와 투표율의 힘이다. 참여하지 않으면, 대변되지 않는다.
불균형은 주거, 노동, 창업 정책 전반에 걸쳐 반복된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었다는 외형적 변화 뒤에는 기회의 선진국이 되지 못한 현실이 존재한다. 경제 선진국이 '정치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정치인들이 강성지지층, 기성세대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이유와 같다. 투표하는 사람만 투표 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현실의 무게에 의해 설계된다. 그 무게는 수치이고 결국 표다. 정치권은 응답하는 세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침묵하는 세대에 무관심하다. 86·97세대는 이미 그들의 권리와 요구를 제도 안에서 완성했다.
클릭이 아니라 선택이 필요하다. 리트윗이 아니라 투표가, 해시태그가 아니라 실제 번호표를 쥐는 행동이 필요하다. 정치는 참여하는 자의 것이고, 시대 정의는 투표하는 이들이 만든다. 이제 청년이 정치에 말을 걸어야 할 차례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