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AI 인재 전쟁, 이제 대학의 시간이다.

양오봉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대교협 제공]
양오봉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대교협 제공]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AI)·빅데이터·디지털 트윈 등 첨단 기술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면서 디지털 인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의 '2023년 인공지능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AI 기업 2354개 중 81.9%가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으며, 고용노동부는 2027년까지 약 1만2000명의 AI 인재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인력 수요에 제대로 된 대응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이와 달리 미국은 5000억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를 발표했으며, 중국 역시 국가 주도의 막대한 투자와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AI 인재 유치 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 세계가 AI를 비롯한 디지털 분야에서 기술 패권을 둘러싼 전면전에 돌입한 가운데, 우리나라의 대응은 상대적으로 미진한 상황이다.

이러한 흐름을 타개하기 위해 새 정부는 'AI 대전환'을 통해 세계 3대 AI 강국 도약을 목표로, 글로벌 수준의 인재 양성체계와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학교육의 혁신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는 시의적절하며 매우 환영할 만한 방향이다. 국내외 디지털 전환의 중심에는 바로 대학이 있다는 의미다. 이제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핵심 거점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미 대학은 국내 어느 기관보다 우수한 두뇌 자원과 교육·연구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그 방향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인공지능사업 운영상 느끼는 애로사항 설문조사 결과 (문항: AI 인력부족)
 출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2024). 2023년 인공지능산업 실태조사
인공지능사업 운영상 느끼는 애로사항 설문조사 결과 (문항: AI 인력부족) 출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2024). 2023년 인공지능산업 실태조사

무엇보다 모든 학문 분야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융합 교육이 시급하다. 기존의 전공 중심 커리큘럼만으로는 급변하는 산업 수요를 반영하기 어렵다. 필자가 재직 중인 전북대는 최근 'AI 스페이스'를 구축해 학생과 교직원이 초고성능 장비를 직접 활용하며 창의적 실험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학이 디지털 역량을 키우는 실천적 실험장을 제공해야 한다.

또 마이크로디그리, 석·박사 통합과정, 유연한 학사제도 등을 통해 학생 주도의 학습설계가 가능해야 하며, 학사·행정 전반의 디지털 전환도 병행돼야 한다. 이는 보다 효율적이고 유연한 학사 운영으로 이어져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여기에 산업 현장과 연계된 실무 중심 교육을 통해, 현장에서 곧바로 활용 가능한 실전형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디지털 기술 분야의 우수한 교수 인력 확보는 대학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첨단산업 전략 분야별 핵심 교수 인력 유치를 위한 국가 기금 조성을 제안한 것도 이러한 절박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각 대학의 여건 개선이 선행돼야 실질적인 디지털 교육 혁신도 가능하다.

고급 인재와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지원도 강화돼야 한다. AI 특화형 대학원을 확대해 연구 중심의 교육체계를 강화하고, 대학원생의 처우 개선과 주거 지원을 통해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해외 우수 인재를 국내로 유치하고 정착시킬 수 있는 종합적 지원 체계도 필요하다.

최근 도입된 'K-Tech Pass'나 'Top-Tier 비자'는 좋은 출발점이지만, 주거·교육·문화 인프라까지 갖춘 'AI 특구' 조성을 통해 유학생 유치와 정주 기반 마련으로 확대돼야 한다.

아울러 모든 학생을 위한 '디지털 공통교양'과 디지털 윤리교육의 도입도 필요하다. 전공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이 소프트웨어와 AI 기술에 대한 기초 소양을 갖추도록 해야 하며, 알고리즘의 공정성, 데이터 프라이버시 등 디지털 사회의 핵심 윤리 문제에 대한 감수성과 책임 의식을 함께 길러야 한다. 이러한 '디지털 시민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역량이다.

무엇보다 디지털 인재 양성은 개별 대학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가 차원의 재정적·정책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AI 교육의 기본 전제인 고성능 GPU 자원과 클라우드 기반 서버 환경을 비롯해, 엔비디아 A100급 GPU, 고속 데이터망, 대용량 저장장치 등 고사양 인프라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미 AI 인재 양성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중국과, 트럼프 대통령 당시 5000억 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구축을 선언한 미국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교육비 비율.
 출처: 교육부(2024).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 2024 결과 발표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교육비 비율. 출처: 교육부(2024).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 2024 결과 발표

아울러 장기적인 고등교육 재정 투자와 규제 완화, 교육과정의 유연화, 산학연 협력 플랫폼 구축 등 종합적인 정책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학생 1인당 고등교육 공교육비는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지만, 반드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다.

디지털 인재는 단순히 기술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기술을 적절히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융합형 인재가 바로 디지털 인재다. 대학은 그런 인재를 길러내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자,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플랫폼이다.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 이제 대학이 인재 양성의 최전선에 서야 한다.

양오봉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필자〉고려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화학공학 석사 및 박사를 받았다. 전북대 공과대학 화학공학부 교수로 재직했으며, 2023년부터 전북대 총장으로 재임 중이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위원, 국가기후환경회 전문위원, 글로컬대학협의회 제1대 회장 등을 역임했다. 올해 3월 제29대 대교협 회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