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장기 불황에 빠진 석유화학산업에 '강도 높은 자구책'을 압박했다. 최대 370만톤의 나프타 분해 설비(NCC) 감축을 목표로 설정하고 연말까지 각 사별 재편계획 제출을 요구한 것이다. 업계는 감축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정부의 개입이 없다면 오히려 기업 간 갈등을 부추기고 경쟁력 제고를 지연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과잉 설비 감축 및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으로의 전환 △재무 건전성 확보 △지역경제·고용 영향 최소화 등 '석유화학산업 구조 개편 3대 방향'을 발표했다.
270~370만톤 규모의 NCC를 감축하고 줄어든 기초 유분의 비중을 고부가·친환경 제품으로 대체해 경쟁력 강화,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각 사는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업 재편 계획을 마련해 연말까지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선 자구책, 후 지원' 원칙을 강조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기업과 대주주가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토대로, 구속력 있는 사업재편 및 경쟁력 강화 계획을 빠르게 제시해야 한다”라면서 “업계가 제출한 계획이 진정성 있다고 판단되면 규제 완화, 금융, 세제 등 종합대책을 적기에 마련해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같은 날 열린 '사업재편 자율협약식'에서 “기업이 책임 있게 사업재편에 나선다면, 정부도 사업재편이 속도감 있게 완수되도록 금융·세제·규제개선·R&D 등 지원 방안을 통해 프로젝트별 맞춤형으로 지원해 나가겠다”라며 “책임있는 자구노력 없이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려 하거나 다른 기업들의 설비 감축의 혜택만을 누리려는 기업은 정부의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석유화학업계는 정부의 방침에는 공감하지만 사업 재편과 관련한 정부의 적극적인 가이드가 없다면 계획 도출에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기업별로 규모와 환경이 다른 상황에서 NCC 감축 방법론을 두고 이견이 발생할 수 있고 버틸 체력이 남아있는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이 이뤄지면 중소기업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설비 감축을 통한 효율화를 이끌어 경쟁력을 높인다는 부분에서는 동의한다”라면서도 “다만 기업들이 스스로 풀기 어렵다. 정부가 압박만 가할 것이 아니라 주도권을 갖고 설비 감축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모든 NCC 설비를 목표치에 맞게 낮추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경쟁력 제고 효과가 없기 때문에 통합을 통한 효율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업계에서도 이를 위해 물밑으로 활발하게 움직였지만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연말이라는 데드라인 설정과 지원 차등화라는 조건이 걸린 상황 속에서 기업별 갈등이 촉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엄찬왕 한국화학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기본적으로 사업 재편이 필요하다는 것에 큰 틀에서 공감한다”라면서 “구체적 논의가 오간 것은 아니다. 기업별로 개별적으로 접촉할 것 같다”라고 밝혔다.
조성우 기자 good_s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