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발행 여부'에서 '사용 활성화'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 지니어스(GENIUS) 법 발표 이후 홍콩, 일본, 브라질 등의 자국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실험이 본격화하면서, '발행은 이미 세계적 추세'라는 인식이 커졌다. 이젠 '사용 활성화'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국내시장 잠식을 막고, 스테이블코인의 장점을 살려 관련 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분야별로 간단히 살펴보자. 우선 온라인 쇼핑, 구독 서비스, 플랫폼 결제 등이 일상화돼 있는 전자상거래(E-commerce) 분야를 생각할 수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용이 활성화될 수 있을까. 일각에선 비용과 속도 면에서 강점이 있는 스테이블코인 사용이 활발할 거란 기대가 있지만, 개인적으론 내국인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결제 영향력은 대단히 크진 않을 거란 생각이다. 왜냐하면 스테이블코인은 사실상 현금 또는 직불 거래와 마찬가지인데, 현재 현금 또는 직불 결제시장은 전자상거래 총결제의 30%로 대부분인 70%가 신용 카드 결제기 때문이다. 소비자로서도 신용 카드 수수료(평균 1.8%) 대비 현금 또는 직불 결제 수수료(약 1%)의 차별성이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하지만 외국인이 국내에서 결제하거나 내국인이 해외에서 결제할 땐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크게 활성화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의 경우 외화 휴대에 제한이 있고, 온라인 결제로 원화 계좌가 있어야 해서, 은행 계좌가 필요 없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대단히 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수료 측면에서 보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비자·마스터의 카드 수수료가 총 4%(브랜드, 가맹점, 환전 수수료 포함)로 국내의 카드 수수료보다 훨씬 높다. 그만큼 스테이블코인 사용 유인이 큰 셈. 따라서 예컨대 외국인의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관련 업계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환전해서 결제로 유도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용은 물론 외국인 관광산업(1~7월 외국인 관광객 누적 1,000만 명 상회)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물론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나 필요한 인프라 구축이 뒤처지면, 반대로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시장 잠식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단 얘기다. 해외 사례로는 싱가포르 핀테크업체인 스트레이츠엑스의 스테이블코인(XSGD)을 벤치마킹할 만하다. 스트레이츠엑스는 동남아 최대 슈퍼앱인 그랩(Grab), 글로벌 결제망이라 할 수 있는 알리페이플러스(Alipay+)와 제휴·협력하고 있다. 그 결과 외국 관광객이 싱가포르 내의 그랩 가맹점에서 결제하면, 기존의 복잡한 환전과 정산과정 없이 XSGD를 통해 실시간으로 처리된다. 그만큼 빠르고 효율적이어서, 국경 간 결제의 고비용·저효율 문제를 해결한 모범 사례로 평가된다.
내국인이 해외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현재 내국인의 해외 결제 수단은 해외 카드망(예 : 비자·마스터) 결제로 구조화돼 있어서, 원화 자체의 결제는 사실상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향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매개로 하면 환전 비용을 낮춤은 물론, 글로벌 카드망을 쓰지 않고 원화 자체로 해외 결제할 수 있는 수단을 다양화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내국인 소비자뿐 아니라 K-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는 해외 소비자에게도 비용 절감 이익을 줄 수 있어서 K-브랜드 제품의 가격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
해외송금도 중요한 분야다. 현재 SWIFT를 통한 송금은 시간(2~3일)과 비용(6~7%) 면에서 블록체인에 기반한 스테이블코인(1시간 이내, 1% 미만) 대비 효율성이 훨씬 떨어진다.
특히 중간 은행(Correspondent Bank) 등을 거칠 때마다 발생하는 수수료와 정산 지연은 근로자 송금이나 중소기업 무역 거래에서 큰 부담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이 과정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또 다른 기회는 K-컬처다. 전 세계 팬덤이 형성된 K-팝, 드라마, 게임 산업은 매년 결제와 정산이 어마어마하다. 티켓 예매, 음원 구독, 굿즈 구매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수단으로 자리매김한다면, 글로벌 팬들은 달러 등의 결제 수단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원화를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결제 수단의 도입을 넘어 원화의 국제화를 촉진하는 계기로 연결된다. 나아가 아티스트 정산, 콘텐츠 유통사 간 거래에서도 즉시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어, 업계 전반에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물론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사용이 활성화되려면 제도적 뒷받침을 서둘러야 한다. 첫째, 정책 지원이다. 발행·유통을 둘러싼 법적 불확실성을 줄이고, 기술 중립적 규제를 통해 민간 실험을 다양화해야 한다. 둘째, 민간의 인프라 구축이다. 금융기관과 핀테크 기업이 결제망 연동, API 개방, 보안 체계 강화 등 실제 사용 환경을 빨리 준비해야 한다. 셋째, 인센티브 설계다. 이용자와 사업자가 체감할 수 있는 혜택 제공이 되도록 혁신 유도가 중요하며, 그래야 사용 활성화와 확산이 가능하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잠식 방어를 넘어 관련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활성화하는 방아쇠가 되길 기대한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겸 디지털경제금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