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과 물리적 환경 융합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며 피지컬 AI가 차세대 전략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동차와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며, 분산된 센서와 AI가 결합해 도시·물류·제조·의료 전반을 재편하는 시대도 도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이 선도적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술력 뿐만 아니라 실증과 사업화가 가능한 환경, 즉 규제와 인프라를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전파 특구' 조성이 필수적이다.
피지컬 AI는 결국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는 지능형 시스템이다. 자율주행로봇, 드론, 모빌리티(UAM, 자동차), 의료·돌봄 로봇, 방재·안전 로봇 모두 끊임없이 무선통신, 전파센서 그리고 무선충전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를 교환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스스로 움직이면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음과 같은 한계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실증에 어려움을 겪는다. 전파 출력·주파수 제한으로 인해 실외 테스트가 제한적이며, 특정 전파 규격 실험이 불가능해 글로벌 표준 대응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리고, 대규모 로봇 군집·자율주행 테스트를 위한 공간도 부족하다.
즉, 시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현장에서 실제로 동작시키는 것이 더 어려운 산업이 피지컬 AI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기술이 시장으로 이동하는 속도는 현저히 느려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쟁에 앞서려면, 기반부터 완제품까지 통합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실증 인프라가 필요하다. 피지컬 AI 시대의 경쟁력은 더 이상 기술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빨리, 안전하게, 광범위하게 실증할 수 있는지가 국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전파 특구'는 피지컬 AI 산업의 국가 전략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전파 특구란 특정 지역을 정해 주파수, 출력, 전파 기술에 대한 규제를 유연화해, 기업과 연구기관이 자유롭게 실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전파 특구가 구축되면 다음과 같은 효과가 기대된다.
첫째, 전파 기반 로봇·모빌리티 기술의 일괄 실증이 가능하다. 군집 로봇, 자율주행, 원격 제어, 로봇 물류 등 다양한 전파 규격과 출력 조건에서 실험이 가능하므로, 규제 부재로 인해 지연될 수 있는 신기술의 실증 및 상용화를 촉진해, 제품 및 서비스 출시까지 걸리는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글로벌 표준 대응의 중심지 역할이 가능하다. 국내에서 다양한 주파수 환경에서 시험이 가능하고, 국제 인증 및 해외 진출에 필요한 검증 환경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피지컬 AI 기술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셋째, 지역 중심 산업 클러스터 조성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모빌리티 산업의 경우, 전북은 상용 트럭, 광주와 울산은 완성차, 대구· 경북과 경남은 기계 부품 등 지역별로 제조공장이 잘 구축돼 있다.
하지만, 로봇 산업의 경우, 아직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중이고, 모빌리티 산업 대비 서비스, 제조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으므로, 스타트업, 중소·중견기업, 대기업 및 대학과 연구기관, 시험기관들이 함께 입주해, 테스트베드에서 시범사업, 상용화로 이어지는 가치사슬 구축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지역 경제 활성화 및 고급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넷째, 안전한 실증·검증 체계를 통해 사회적 신뢰 확보가 가능하다. 단일 지역에서 안전성 검증 프로세스를 마련하여, 전파 간섭·보안 문제를 사전에 해결하고, 국민 체감형 서비스 도입 속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
앞으로 피지컬 AI 시대에는 도시 인프라, 물류 체계, 제조 라인, 재난 대응, 국방·안보 등 전 분야에서 지능형 물리 시스템이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별 기관이나 기업이 해결할 수 없는 '국가 단위 실증 생태계'이며, 그 핵심이 바로 전파 특구다. 우리나라가 피지컬 AI 산업의 글로벌 선도국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과 동시에 이를 실제 환경에서 빠르게 검증하고 확산할 수 있는 전파 기반의 개방형 실험 도시, 실험 단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규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논쟁이 아니라 어떻게 더 빠르게, 더 안전하게, 더 넓은 범위에서 실증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필요하다. 전파 특구 지정은 단순한 규제 완화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미래 산업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전략적 투자다.
피지컬 AI 산업의 글로벌 경쟁이 본격화되는 지금, 혁신 생태계의 실험장을 먼저 구축한다면 우리는 기술 뿐만 아니라 산업·시장·국가 브랜드 가치까지 새로운 도약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변우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대경권연구본부장·한국전자파학회 신기술 상임이사 wjbyun@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