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한국형AI 필승카드-데이터 막혀 AI 못 큰다…'활용·공유'여는 제도 혁신이 먼저

[신년기획]한국형AI 필승카드-데이터 막혀 AI 못 큰다…'활용·공유'여는 제도 혁신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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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AI 강국'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현장에서는 데이터 결합과 활용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이 여전하다.

제조업에서는 노하우가 곧 영업비밀이라는 인식 때문에 데이터 공유 유인이 약하고, 금융권 등 서비스 업체들은 풍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만 규제와 책임 부담이 발목을 잡는다. 전문가들은 AI 투자만 늘려서는 한계가 명확하다며, 데이터 활용을 허용하면서도 영업비밀과 개인정보를 지키는 제도 혁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조·금융 기업들은 AI 경쟁력 확보를 위해 막대한 투자를 진행 중이지만, 정작 AI 학습 핵심 자원인 데이터 활용 단계에서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제조업체들은 자사 생산 공정 데이터를 다른 업체는 물론 동일 그룹사에도 공유하기를 꺼린다. 공정 데이터와 설비 운영 정보에는 수십 년간 축적한 제조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이를 공유하는 것이 곧 경쟁력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는 일부 대기업에서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같은 그룹 내에서도 각 계열사가 독자적으로 AI를 개발하는 이유는 데이터 공유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면서 “ 누가 얼마나 권한을 가져갈 것인지, 수익은 어떻게 나눌 것인지 합의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결국 동일한 AI 솔루션을 여러 번 중복 개발하는 비효율이 발생하지만, 데이터 공유로 인한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해 각자도생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적극 추진 중인 제조 인공지능전환(AX) 정책도 이 같은 데이터 공유 문제로 현장 적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중견기업 임원은 “정부가 제조 데이터를 모아 AI를 학습시키자고 하지만, 우리 회사 데이터를 경쟁사가 볼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이라며 “데이터 제공자 권리를 명확히 보장하는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선뜻 나서기 어렵다”고 말했다. 데이터 결합 과정에서 각 주체 권한과 성과 배분을 명확히 정하는 법 체계가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서비스업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등은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개인정보 유출 우려와 금융당국 엄격한 규제 때문에 데이터 결합에 소극적이다.

마이데이터 사업만 놓고 봐도 업권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면서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최근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추진 중인 마이데이터 '본인전송요구권' 전 분야 확대를 두고, 주 대상 중 하나인 유통업계는 반발 중이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과 산업 기밀 침해 가능성 위험이 있다는 것인데, 이는 결국 제도적 미비가 큰 배경이라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데이터 활용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는지 불분명해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며 “AI 투자는 늘리라고 하면서 정작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는 못 쓰게 하는 모순”이라고 토로했다.

한 시중은행 디지털 담당 임원은 “내부 데이터만으로는 AI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지만, 외부 데이터와 결합하려면 규제 해석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당국에 문의해도 명확한 답을 받기 어려워 결국 보수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 핵심은 법과 가이드라인 불확실성이다. 현행 제도로는 어디까지가 합법적 데이터 활용인지, 문제 발생 시 책임은 누가 지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이달 시행을 앞둔 AI기본법도 기업들이 실제로 참고할 구체적 기준은 향후 나올 하위 가이드라인에 위임돼 있어, 현장 혼란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로펌 관계자는 “AI 관련 분쟁이 발생했을 때 어떤 법리가 적용될지 선례가 없다 보니 기업들이 위험을 감수하기 어렵다”며 “면책 규정이나 세이프 하버(Safe Harbor) 조항 등을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데이터 결합과 공유를 촉진하면서도 영업비밀과 개인정보를 동시에 보호하는 기술·제도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안전한 데이터 결합 기술, 명확한 권한 관리 체계, 감사와 추적이 가능한 시스템, 가명·익명 처리 기술,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 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연합학습은 원본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고도 각 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로 공동 AI 모델을 학습시킬 수 있어 제조업과 금융권 모두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 AI 스타트업 대표는 “연합학습 기술은 이미 성숙했지만, 이를 적용했을 때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데이터 제공자 권리는 어떻게 보장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가 없다”면서 “기술은 준비됐는데 제도가 발목을 잡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데이터를 직접 공유하지 않아도 AI 협업이 가능한 기술적 방법들이 있지만, 이에 대한 법적 지위와 책임 구조가 명확하지 않아 도입이 지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위험 관리 중심 규제 틀을 유지하면서도, 네가티브 방식으로 데이터 활용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빅테크 관계자는 “AI 강국을 말하면서 정작 AI가 학습할 데이터는 쓸 수 없게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데이터 활용을 허용하는 것과 책임 구조를 명확화하는 것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중구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서울사무소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 'AI기본법 시행 대비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박종진기자 2025.12.24
서울 중구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서울사무소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 'AI기본법 시행 대비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박종진기자 2025.12.24

김시소 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