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가스공사의 인공지능 전환(AX)이 시범 단계를 넘어 실제 운영 현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내부 전용 생성형 AI와 AI 기반 운영 시스템을 수급·안전·설비관리 핵심 업무에 적용했고, 당진 LNG 생산기지에는 AI 통합센터를 개소해 실시간 현장 운영 체계를 가동했다. 에너지 공기업 AX가 선언이나 파일럿을 지나 업무 표준으로 자리 잡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가스공사는 지난해 9월부터 사내 업무망 전용 생성형 AI와 민간 상용 AI를 연계하는 하이브리드 AI 플랫폼 구축에 착수했고, 12월 4일 내부망 서비스 개시를 계기로 활용 범위를 본격적으로 넓혔다. 초기에는 문서 초안 작성, 회의자료 요약, 번역, 자료 조사 등 반복적인 행정 업무 자동화에 활용했지만, 현재는 수급 관리와 설비 진단, 안전 대응 등 운영 의사결정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다.
가스공사 AX 전략의 출발점은 '보안 전제형 AI'다. 외부망과 분리된 내부망 환경에서 사내 전용 생성형 AI를 구축하고, 업무 문서와 운영 매뉴얼, 내부 규정, 과거 사고 사례 등 공사 내부 데이터만을 학습한 전용 언어모델(LLM)을 적용했다. 외부 정보 분석이 필요한 경우에는 민간 상용 AI를 활용하되, 정보유출방지(DLP) 기술을 적용해 데이터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모델 학습에 재사용되지 않도록 차단했다. 에너지 공급 안정과 직결된 업무 특성을 고려한 조치다.
AI 활용의 가장 큰 변화는 수급 관리 분야에서 나타난다. 가스공사는 'AI 기반 천연가스 송출량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을 통해 생산기지별 송출 압력과 유량, 관말 압력 데이터를 장기간 학습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배관망 분석(KOSPA) 결과와 연계해 압력 미달 가능성을 사전에 검증하고, 설비 가동 우선순위와 비용 요소를 함께 고려해 최적의 송출량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중앙통제소에서는 AI가 제안한 복수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보다 신속하고 정교한 수급 판단이 가능해졌다.

기존에는 숙련자의 경험과 수작업 분석에 의존하던 영역이었지만, AI가 사전 분석을 담당하면서 판단의 속도와 일관성이 크게 높아졌다. 이는 수급 차질 발생 가능성을 낮추고, 급변하는 에너지 수요 환경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설비와 안전 관리 분야에서도 AI는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스공사는 공정위험 사전예측(PRP) 시스템을 통해 압력·온도·유량 등 1만5000~4만3000개 공정 요소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있다. 방대한 계측 데이터 가운데 위험 징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패턴을 AI가 먼저 탐지해 운전자에게 경고하는 구조다.
이전에는 운전자가 다수의 화면과 데이터를 동시에 확인해야 했지만, AI 도입 이후에는 이상 신호가 선별적으로 제시되면서 모니터링 부담이 크게 줄었다. 사고 발생 가능성이 감지될 경우, AI는 과거 유사 사례와 대응 매뉴얼을 종합해 대응 시나리오를 제안한다. 사고 대응을 사후 처리 중심에서 사전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 같은 AI 적용은 현장 안전 강화뿐 아니라 운영 효율 개선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PRP 시스템 도입으로 연간 약 1700시간 이상의 실시간 모니터링 업무가 절감될 것으로 예상되며, 반복 점검과 단순 판단 업무가 줄어들면서 인력은 보다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가스공사는 이를 통해 안전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높이는 운영 혁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는 대표적인 예지보전(Predictive Maintenance) 사례이기도 하다. 산업통상부가 주도하는 M.AX 얼라이언스 참여 민간 기업의 AX도 예지보전이 최우선 목표다.
업계에서는 가스공사 사례를 공기업 AX의 전환점으로 평가한다. 그동안 공기업 AI 도입이 행정 효율화나 시범사업에 머물렀다면, 가스공사는 수급·안전·설비라는 핵심 운영 영역에 AI를 적용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패 비용이 큰 영역에 AI를 본격 투입하면서, 공기업 AI 활용이 실험을 넘어 업무 표준으로 이동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분석이다.
특히 가스공사 AX는 AI가 의사결정을 대신하는 구조가 아니다. 최종 판단과 책임은 사람이 맡되,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해 선택지를 제시하고 판단의 정확성과 속도를 높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공기업이 AI를 받아들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가스공사 사례는 공기업 AI 전환이 선언이나 파일럿 단계에 머물지 않고 실제 운영 체계로 진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향후 전력·정유·발전 등 다른 에너지 공기업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