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기억 세포 간 연결에서 '기억 떠오르지 않는 이유' 찾았다

우리가 특정 경험을 할 때 활성화된 일부 신경세포 집단이 기억을 담당하는 '엔그램 세포'로 기능하며, 기억 저장·회상에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기억을 회상하는 데에는 엔그램 세포 자체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기초과학연구원(IBS·원장 직무대행 김영덕)은 강봉균 기억 및 교세포 연구단장팀이 엔그램 세포뿐만 아니라 이 세포들 사이에 형성되는 시냅스 수와 구조적 변화가 기억을 회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밝혀냈다고 20일 전했다.

특정 경험에 대한 학습이 일어나면 엔그램 세포들 간의 시냅스(신경 회로를 구성하는 기본 연결 단위) 연결에 변화가 나타난다. 시냅스 수(밀도)가 증가하고 개별 시냅스를 이루는 돌기 구조 크기도 함께 커진다. 돌기 머리 부분이 커질수록 시냅스 연결이 강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시냅스의 변화가 기억이 실제로 회상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학습 이후 단백질 억제제 투여 방식에 따른 시냅스 변화
학습 이후 단백질 억제제 투여 방식에 따른 시냅스 변화

연구진은 학습 후 나타나는 시냅스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공포 기억과 밀접하게 관련된 복측 해마(ventral CA1)와 기저 편도체(basal amygdala)를 연결하는 뇌 회로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생쥐에게 특정 환경을 불쾌한 자극과 연결해 공포기억을 형성하는 '공포 조건화 실험'을 수행한 뒤 공포 기억 학습 전후 뇌 회로에서 나타나는 시냅스 변화를 관찰했다. 이 과정에서 엔그램 세포에서 유래한 시냅스와 그렇지 않은 시냅스를 구분해 고해상도로 시각화하고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공포 학습 이후 나타나는 시냅스 변화는 전체 시냅스에서 무작위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엔그램 세포들 사이를 잇는 시냅스에서만 선택적으로 나타났다. 학습 이후 엔그램 시냅스의 수는 대조군에 비해 현저하게 증가했으며, 개별 시냅스를 이루는 돌기 구조 크기도 함께 커졌다. 반면 엔그램 세포와 비 엔그램 세포 사이의 시냅스에서는 이런 변화가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

이어 연구진은 시냅스 변화가 실제로 기억 회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고자, 학습 직후 단백질 합성 억제제를 투여해 시냅스 변화를 억제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단백질 합성을 한 차례 억제한 경우에는 엔그램 시냅스의 구조적 크기 증가는 대부분 억제됐으나, 시냅스의 수 증가는 상당 부분 유지됐다. 반면 6시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억제한 경우에는 시냅스의 크기와 수 증가가 모두 차단돼, 학습 이후 관찰되던 시냅스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차이는 생쥐의 기억 회상 행동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공포를 학습한 생쥐는 같은 환경에 다시 노출되면 기억이 떠올라 몸이 얼어붙는 행동을 보인다. 단백질 합성을 한 차례 억제한 조건에서는 이러한 회상 반응이 감소했지만, 엔그램 세포를 직접 자극해 기억을 강제로 재활성화했을 때에는 회상 반응이 유지됐다. 반면 시냅스 변화 자체가 차단된 조건에서는 자연적인 회상 반응뿐 아니라 인위적으로 유도한 회상 반응까지 현저히 감소했다. 이는 기억을 저장한 엔그램 세포가 형성되더라도, 세포들을 잇는 충분한 시냅스 연결이 형성되지 않으면 기억이 행동 수준에서 회상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강봉균 단장은 “엔그램 세포가 기억을 저장한다는 사실에 비해, 그 기억이 실제로 회상되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는 명확하지 않았다”며, “이번 연구는 기억 회상이 세포 간 시냅스 연결 상태에 의해 결정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기억 회상 실패나 기억장애와 같은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지난 12일 게재됐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