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칼럼〉AI 시대, 교육에서 우리가 합의해야 할 최소한의 원칙…기술의 속도보다 교육의 기준을 먼저 묻다

이형세 한국디지털교육협회 회장· 테크빌교육 대표.
이형세 한국디지털교육협회 회장· 테크빌교육 대표.

정책과 사업을 통해 학교에는 늘 새로운 기술이 소개된다. 설명회가 열리고, 연수가 이어지며, 교실에서는 조심스러운 시도가 시작된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풍경은 갈라진다. 어떤 기술은 교무실 게시판의 안내문으로 남고, 어떤 기술은 몇 차례의 연수를 거쳐 수업의 한 장면이 된다.

교육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느끼는 것은 교실은 기술을 빠르게 소비하기보다 오래 검토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교실은 늘 기술을 선택하고, 동시에 조용히 떠나 보내는 일을 반복해 왔다.

최근 1~2년 사이, 인공지능(AI)은 이 익숙한 풍경을 빠르게 흔들고 있다. 생성형 AI는 더 이상 특정 수업이나 실험적 프로젝트에 국한된 도구가 아니다. 자료 제작, 평가 보조, 개별화 학습, 행정 업무에 이르기까지 AI는 이미 교사의 일상적인 판단 영역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 변화는 질문을 바꾼다. 이제 학교에서 AI를 쓸 것인가의 문제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대신 어떤 기준 위에서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앞에 놓였다. 속도가 아니라 기준의 문제인 것이다.

AI 도입을 둘러싼 논의는 이제 기능과 속도의 경쟁에서 벗어나, 얼마나 인간의 주도성이 지켜지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교육에서는 이 기준이 특히 중요하다. 교육은 다른 영역보다 속도의 결과를 오래 감당해야 한다. 한 번 교실에 들어온 기술은 학생의 학습 방식과 사고 구조에 의도치 않은 흔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AI·디지털 교육에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능이나 더 빠른 도입보다 최소한의 합의된 원칙이다. 모두의 의견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기준이 아니더라도, 어디까지는 함께 지키자고 말할 수 있는 선이다.

[에듀플러스]〈칼럼〉AI 시대, 교육에서 우리가 합의해야 할 최소한의 원칙…기술의 속도보다 교육의 기준을 먼저 묻다

첫째, 교사의 전문성은 기술로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AI는 많은 일을 지원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지원한다'는 말이 곧 '대체한다'는 뜻은 아니다. 교육에서 교사의 전문성은 정보를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는가가 아니라, 상황을 해석하고 판단하며 책임지는 능력에 있다. AI가 제안하는 결과를 그대로 따를지, 수정할지, 거부할지는 여전히 교사의 몫이다. AI를 활용한 수업이 늘어날수록 교사의 역할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명확해져야 한다. 기술은 보조자일 수 있지만, 교육적 판단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둘째, 학교에는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필요하다. 모든 학교가 같은 기술을, 같은 방식으로 동시에 도입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학교의 여건과 학생 구성, 교사의 준비는 모두 다르다. AI 도입 역시 학교의 교육 목표와 맥락 속에서 속도와 방식이 조정될 수 있어야 한다. 특정 기술을 쓰는 것이 '진보'의 증거가 되고, 사용하지 않는 것이 '뒤처짐'으로 해석되는 순간, 학교의 자율성은 형식에 머물게 된다. 기술을 선택할 자유만큼이나 선택하지 않을 자유 역시 존중 받아야 한다.

셋째, 학생 데이터는 '자원'이 아니라 '책임'이다. AI 기반 교육에서 데이터는 피할 수 없는 핵심 요소다. 학습 로그, 수행 결과, 행동 패턴은 맞춤형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학생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정보이기도 하다. 학생 데이터는 활용의 대상이기 이전에 보호의 대상이다. 어디까지 수집할 것인지, 누구에게 접근 권한이 있는지, 언제까지 보관하고 어떻게 폐기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기술이 아니라 교육의 책임으로 다뤄져야 한다. 이 원칙이 흔들릴 때, AI는 학습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학교를 불신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넷째, 기술은 언제나 교육보다 앞설 수 없다. AI는 빠르게 진화하지만, 교육의 목적은 그보다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움직인다. 기술은 중립적일 수 있지만, 기술을 사용하는 결정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래서 AI·디지털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최신 기술을 얼마나 많이 활용하는지가 아니라, 그 기술이 교육의 방향과 충돌하지 않는가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일이다.

최소한의 합의가 필요한 시점

AI는 이미 교실에 들어와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도입의 성과를 자랑하는 일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를 묻는 일이다. 여기서 제시한 원칙들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정답은 아니다. 다만, 무엇을 더 빠르게 도입할지 보다 무엇을 먼저 지켜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기 위한 기준이다.

교육은 기술보다 항시 느리게 움직여 왔다. 그 느림은 뒤처짐이 아니라, 선택과 책임을 위한 숙고의 시간이었다. AI 시대의 디지털 교육 역시 그 시간을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학교 안에 오래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형세 한국디지털교육협회 회장·테크빌교육 대표 hslee@tekville.com

◆이형세 회장은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AIP, KAIST 진대제 AMP, 성균관대 WAMP 과정을 수료했다. 2001년부터 테크빌교육 대표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MOT대학원 겸임교수, 국가·대학·공공기관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한국이러닝산업협회 회장 등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