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방송산업은 구조적 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시청과 청취 행태는 이미 글로벌 플랫폼과 디지털 환경으로 이동했지만, 국내 방송은 여전히 과거의 산업 구조와 재원 모델에 묶여 있다. 그 결과 기존의 광고 재원은 급속히 위축되고 있으며, 유료방송·라디오 등 전통 미디어는 글로벌 OTT와 빅테크 플랫폼과의 경쟁 속에서 이용자 권익 보호와 산업 지속 가능성 모두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
특히 방송광고 시장의 변화는 이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광고시장은 데이터 기반 타기팅과 성과 검증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나, 국내 방송은 여전히 제한된 효과 지표와 낮은 설명력에 의존하고 있다. 광고 효과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하는 구조는 광고주의 이탈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콘텐츠 투자 여력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이는 개별 사업자가 안고 있는 단순한 매출 감소의 문제가 아니라, 광고주·방송사업자·정책 환경 전반에서의 신뢰 약화라는 구조적 문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송산업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새로 보강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주도의 전략적 진흥 체계 정비와 공공 재원 투입이 불가피하다. 이는 특정 방송사업자를 지원하기보다는, 방송사업자 전반이 공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최소한의 환경을 조성하려는 조치에 가깝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정책 영역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유료방송 셋톱박스 시청데이터의 신뢰 기반 조성과 산업 활용이다. 글로벌 플랫폼은 데이터 통합을 통해 광고 효과를 실시간으로 증명하지만, 국내 방송사업자는 방대한 시청 로그 데이터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산업 표준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신뢰성과 공공성이 문제의 핵심이다. 개별 사업자의 자력만으로는 산업 내 균형을 달성하기 쉽지 않다. 공공이 나서서 데이터의 품질을 검증하는 체계를 마련하고, 검증된 데이터를 사업 모델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광고 생태계를 조성하는 등 산업 활용의 장벽을 완화할 때 시청데이터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둘째는 통합 라디오 플랫폼 구축이다. 라디오는 여전히 필요한 공공 미디어이지만, 디지털 환경에서는 접근성과 이용 편의성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다. 방송사별로 분절된 애플리케이션(앱) 구조는 이용자의 이탈을 가속화했고, 데이터 기반 서비스로의 전환도 지체됐다. 일본 등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라디오 플랫폼의 통합은 방송산업의 공공성과 시장성을 동시에 회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통합 플랫폼은 단순한 앱의 통합이 아니라, 오디오 콘텐츠의 데이터 축적·추천 알고리즘·광고 모델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 인프라이기도 하다.
문제는 누가 이 통합을 주도할 것인가다. 분산된 데이터를 모으고, 이해관계자를 조정하며, 공공성과 시장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역할은 개별 사업자에게 맡기기 어렵다. 지금이야말로 정부가 조정자이자 촉진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할 시점이다. 학계 역시 이 과정에서 중요한 책임을 갖는다. 기술과 산업 논리를 넘어, 데이터 활용의 사회적 영향, 이용자 권익 보호, 공정 경쟁 구조에 대한 검증과 비판적 논의를 통해 정책의 균형점을 제시해야 한다. 공공은 제도와 인프라를 만들고, 학계는 근거와 방향을 제시하며, 사업자는 혁신과 투자를 이어가는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
국내 방송산업의 침체는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데이터와 플랫폼이라는 핵심 인프라에 대한 실천적인 합의와 지원이다. 공공·학계·산업이 역할을 나눠 협력하지 않는다면, 방송산업의 침몰은 막기 어려울 것이다.
강재원 한국방송학회 회장·동국대 교수 jaekang@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