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라인 쇼핑 거래액이 270조 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과거 의류나 식품 등 저단가 소모품에 국한됐던 온라인 소비 지형이 이제는 스마트홈 시스템, 자동차 등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를 호가하는 '고관여 제품'으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 단순한 제품 상세 페이지를 넘어, 실사용자의 일상을 담은 '랜선 콘텐츠'가 구매 결정의 핵심 지표로 부상한 결과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연간 온라인쇼핑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전년 대비 4.9% 증가한 272조 398억원을 기록했다. 2017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규모다. 주목할 점은 상품군별 성장세다. 신선식품(9.5%)의 꾸준한 성장과 더불어 전통적으로 오프라인 대면 구매가 필수였던 '자동차 및 자동차용품' 거래액이 무려 30.5%나 폭증했다. 고가의 자산인 자동차마저 온라인 쇼핑의 영역으로 완전히 편입됐음을 시사한다.
가전·IT 업계 역시 '랜선 집들이' 형태의 실사용 콘텐츠를 앞세워 고관여 제품의 심리적 문턱을 낮추고 있다. 글로벌 AIoT 솔루션 전문 기업 아카라라이프(AqaraLife)가 대표적이다.
아카라라이프는 단순한 제품 스펙 나열 대신, 실제 사용자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케이스 스터디'형 콘텐츠로 호응을 얻고 있다. △치과의사가 선택한 IoT 인테리어 △운동센터 관장의 100평대 크로스핏 센터 구축 후기 △아기와 함께 사는 스마트홈 등 구체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한다.
실제로 매장 관리자가 지문 인식 하나로 열쇠 없이 출퇴근을 관리하거나, 기저귀 갈이대에 진동 센서를 부착해 아기를 눕히면 간접 조명이 자동으로 5% 밝기로 켜지는 식의 디테일한 연출은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단순 주거 공간을 '나를 이해하는 프리미엄 휴게 공간'으로 격상시키는 이른바 '랜선 검증'이 구매의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랜선 육아' 등 고관여 소모품 영역으로도 확장 중이다. 과거에는 지인 추천이나 육아 백과사전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속 유아의 일상을 지켜보는 '랜선 이모'들이 실질적인 큰 손으로 등극했다.
실제로 프리미엄 유모차 브랜드 스토케(Stokke) 등 고가의 유아용 가구 시장은 유명 인플루언서의 '내돈내산' 브이로그가 공개될 때마다 품귀 현상을 빚는다. 단순히 제품을 홍보하는 광고보다, 아이가 실제로 편안하게 사용하는 '15초 릴스' 한 편이 수백만 원대 패키지 결제를 이끌어내는 식이다. SNS를 통해 검증된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복제하려는 소비 성향은 온라인 전문몰의 매출 폭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쌀수록 더 꼼꼼하게 따지는 소비자들의 특성은 정보 탐색 채널의 변화로 이어졌다. 차봇모빌리티가 2026년 신차 구매 예정자 4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차량 정보 탐색 채널 1위는 유튜브 자동차 리뷰(58.1%)가 차지했다. 반면 딜러 상담(18.4%)이나 오프라인 전시장 방문(14.0%)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사실상 영상 기반의 디지털 콘텐츠가 정보 주권을 장악한 셈이다.
이에 완성차 업계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테슬라는 이미 100% 온라인 판매 시스템을 안착시켰으며, 볼보(2025년까지 80%)와 메르세데스-벤츠(25%) 등 전통 레거시 브랜드들도 온라인 판매 비중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여행업계 역시 '랜선 콘텐츠'가 주도하는 소비 열풍의 중심에 서 있다. 소비자들은 별도로 맛집을 검색하거나 동선을 짜는 수고 대신, 유튜버가 제시한 최적화된 동선과 예산을 그대로 이행한다. '48만원으로 연차 없이 떠나는 2박 4일 홍콩 여행'과 같은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이에 발맞춰 하나투어 등 전통 여행사들도 크리에이터와 협업한 '숏폼 전용 여행 상품'을 출시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하나투어 등 전통적인 여행 대기업들도 크리에이터와 협업한 '숏폼 전용 여행 상품'을 출시하거나, 아예 호스트와 함께 떠나는 '밍글링 투어'를 내놓는 등 콘텐츠와 커머스의 경계를 허무는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브랜드 인지도를 보고 매장을 찾았다면, 이제는 실사용자가 제작한 고퀄리티 후기 콘텐츠가 구매를 직결시킨다”며 “제품이 복잡하고 고가일수록, 온라인상의 '랜선 검증'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