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AI시대 '융합 플랫폼'이 필요하다

[기고]AI시대 '융합 플랫폼'이 필요하다

인공지능(AI) 기술의 진화 속도가 산업 전환의 임계점을 넘어섰다. 단순 자동화·효율화 도구에 머물던 AI는 이제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에이전틱 AI'로 진화했고, 로봇·제조·물류 등 물리적 영역과 결합하는 '피지컬 AI'는 산업 경쟁력의 구조 자체를 재편하고 있다. 기술이 화면 속 소프트웨어(SW)를 넘어 현실 공간의 작동 방식을 재설계하는 단계에 본격 진입한 것이다.

글로벌 AI 경쟁은 이미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전략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미국·중국은 물론 유럽·중동·동남아시아까지 AI 패권 경쟁에 뛰어들며 이른바 '글로벌 AI 랠리'가 가속화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경쟁의 축이 모델 성능에서 반도체 공급망 재편, 데이터 주권 확보, AI 규제 프레임 선점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AI 거버넌스와 신뢰 구축이 주요 의제로 다뤄진 것도 기술 주도권이 곧 제도 주도권임을 국제사회가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이런 AI 랠리와 함께 부상하는 지경학적 이슈 속에서 반도체·방산·자동차 분야의 전략적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AI 기술을 통한 산업 전환은 국가 차원에서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음에도, 중소 제조 현장에서 체감하는 속도와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현재 국내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정부와 기업이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미·중과의 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피지컬 AI 영역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은 다양한 산업 도메인에서 축적된 제조기술과 데이터, 모빌리티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을 제외할 경우 상당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분야다. AI와 결합할 경우 폭발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할 산업 기반이 이미 형성돼 있다. 문제는 이런 잠재력을 실제 성과로 전환하는 '연결의 설계'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경기도 4차산업혁명센터(C4IR Korea)는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세 가지 기능을 전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첫째,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간하는 방대한 글로벌 기술·정책 어젠다를 국내 산업 구조와 규제 환경에 맞는 실행 시나리오로 재구성하는 '번역 엔진' 기능이다.

둘째, 기술력은 확보했으나 해외 표준·인증·파트너십 접근에 한계를 겪는 딥테크 스타트업을 전 세계 19개국 25개 WEF 협력센터 네트워크와 연결하는 '글로벌 진출 플랫폼' 기능이다.

셋째, AI 스타트업과 제조·모빌리티·에너지·헬스케어 등 전통 산업 현장을 정기 밋업과 개념 검증(PoC) 매칭을 통해 연결하는 '융합 플랫폼' 기능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명칭이 다소 낡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용어가 담고 있는 본질, 즉 AI를 포함한 전 산업 기반 기술의 융합, 이에 수반되는 제도·신뢰·거버넌스 설계라는 문제의식은 오히려 AI 전환이 본격화된 지금 더욱 유효하다. AI 경쟁력은 모델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데이터 접근성, 책임 있는 활용 체계, 사이버 보안, 국제 규범과의 정합성이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기술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사회적 신뢰를 획득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AI 랠리 속에서 취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모델 개발 경쟁과 더불어 우리의 강점인 제조·하드웨어 역량과 AI를 융합하는 피지컬 AI 전략을 가속화하고, 기술이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과 글로벌 연결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최근 판교에서 개최한 '판다포럼(판교에서 다보스를 만나다)'이 보여주었듯, 글로벌 통찰을 국내 산업 현장의 언어로 번역하고 이를 실행으로 연결해야 한다. 담론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국내 산업 현장에 적용되는 동시에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되는 실행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다.

정원중 경기도 4차산업혁명센터장 stephenwj@gbs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