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 차세대 정보통신(IT)서비스 구축 사업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인건비 등을 절감하면 이에 따른 사업비를 조정하는 조항이 등장했다.
기존에는 프로젝트 투입 인원수와 기간을 기준으로 사업비를 산정했는데, AI 도입이 확산됨에 따라 사업비 책정 등 IT 개발 사업 전반에 변화 기류가 감지된다. AI로 인한 기술적 효율 향상이 인건비 산정의 직접적인 변수가 되면서, 향후 IT서비스 시장 전반의 계약 관행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2일 금융권·관련 업계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최근 총 2704억원 규모 '코어뱅킹 현대화 2단계' 사업을 공고하면서 이 같은 AI 관련 조항을 담았다.
사업은 올해 발주된 차세대 중 가장 큰 규모라 주목받았지만 제안요청서(RFP) 공개 후 AI 관련 계약 조항을 놓고 더 술렁이고 있다.
KB국민은행은 RFP에 “AI 기반의 'C2J(코볼의 자바 전환)' 변환 성능에 따라 업무 개발 인력 투입이 감소할 경우, 공수 감소에 따른 변경계약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을 명시했다.
C2J는 과거 금융권에서 주로 사용하던 코볼 언어를 현대적인 자바 언어로 변환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이 과정은 수많은 개발자가 투입돼 수작업으로 코드를 수정해야 하는 대표적인 노동 집약적 과업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AI 기술의 발전으로 자동 번역과 변환이 가능해졌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AI 기술이 이미 일정 수준 이상 발전했고 향후 더욱 급속도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기술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변경계약 가능 조항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이번 사례가 기술의 효용이 인건비를 대체하는 새로운 사업비 산정 모델 도입을 가속화하는 기점이 될 것으로 봤다. KB국민은행처럼 AI 활용 여부·정도에 따라 사업 초기 예상 대비 전체 사업비가 줄어들 것을 감안해, 사업 중간이나 후반부에 (사업비 관련)계약 변경을 요청하는 사업자가 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AI가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대체하는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전통적인 투입 공수 중심의 계약 관행은 점차 기술적 가치와 품질 중심의 체계로 빠르게 재편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초·중·고급 등 총 100여명의 개발자가 투입되던 사업도 앞으로는 성능 좋은 AI 기술과 10여명 내외의 중·고급 개발자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뀔 수 있다”면서 “사업자가 AI를 빌미로 사업 전체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등 불합리한 발주를 하지 않도록 정부나 업계에서 주의 깊게 봐야하는 한편, 사업자도 변하는 환경에 능동 대응할 수 있는 자구책을 고심해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