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생기고 나서야 부랴부랴 회복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피부 세포 일부를 미리 '준비된 상태'로 바꿔 상처가 생기는 순간 곧바로 빠른 회복에 돌입할 수 있는 원리를 국내 연구팀이 밝혀냈다.
포스텍(POSTECH)은 최세규 생명과학과·융합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주변 세포와 조직 환경을 바꾸어 상처 회복을 촉진하는 원리를 규명했다고 31일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최 교수 연구팀과 생명과학과 통합과정 곽민준·조예민 씨 연구팀, 김종경 생명과학과 교수, 통합과정 최은준 씨 연구팀이 함께했다.연구내용은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피부는 우리 몸에서 가장 바깥을 감싸는 조직으로, 크고 작은 상처에 가장 먼저 노출된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작은 상처는 며칠 안에 아물지만, 당뇨병 환자나 고령자는 작은 상처 하나가 수개월씩 낫지 않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 재생 분야에서 주목받는 기술이 '세포 리프로그래밍(re-programming)'이다.
이 기술은 '야마나카 인자(OSKM)'라고 불리는 네 가지 단백질(Oct4, Sox2, Klf4, c-Myc)을 세포 내에서 과발현 시켜 배아줄기세포 같은 초기 상태로 만든다. 다만, 세포를 완전히 초기화하면 강한 재생 능력이 생기는 대신 세포의 증식과 분화가 통제되지 않아 종양으로 자랄 위험이 있었고, 실제 치료에 활용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완전 초기화' 대신에 '살짝 되감기'를 택했다. 무엇보다 이를 일부 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적용했다. 전체 세포가 아닌 몇 개에만 야마나카 인자를 적용하되, 그 세포들조차 완전히 되돌리지 않고 '살짝 더 젊은 상태'로만 바꾸는 '부분적·모자이크 리프로그래밍' 전략이다. 적용하는 세포 수도 줄이고, 되감는 정도도 약하게 하는, 이중으로 조심스러운 접근이다.

동물 실험 결과, 상처가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도 피부 전체가 '재생 준비 모드'로 전환됐다. 리프로그래밍된 세포뿐만 아니라 주변의 정상인 세포, 면역세포, 피부를 둘러싼 미세환경 전체가 함께 변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부 세포들이 'PI3K-AKT', 'EGFR', 'HIF-1α' 등 생체 신호를 활성화한 결과다. 이 신호들은 세포 성장과 생존, 산소 환경 적응과 관련된 핵심 경로로 세포들 사이에 '우리 곧 상처가 생길 수도 있으니 미리 대비하자'라는 메시지가 퍼져나간 셈이다.
실제로 상처가 생겼을 때는 그 효과가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상처 부위를 덮는 새로운 세포층이 빠르게 형성됐고, 혈관 형성과 면역 반응도 적절히 조절됐다. 그 결과, 치유 속도가 빨라지고 흉터도 줄었다. 특히, 당뇨 환경에서도 피부 재생 능력이 상당 부분 개선됐다.
최세규 교수는 “세포 하나하나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세포 간 소통을 통해 피부 조직 전체 상태를 바꿀 수 있음을 처음으로 증명했다”라며,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제1저자인 곽민준 씨는 “상처 회복이 더딘 당뇨 환자나 고령자를 위한 치료는 물론, 항노화 기술과 만성 상처 치료용 의약품 및 기능성 소재 개발에도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보건복지부의 인공아체세포 기반 재생치료 기술개발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수신진연구사업, 기초연구사업 (기초연구실), 면역기전제어기술개발 및 줄기세포 ATLAS 기반 난치성 치료기술개발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