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데이터 주권' 없이는 '에너지 주권'도 없다

함일한 에이치에너지 대표 겸 포항공대 산업경영학과 겸직교수
함일한 에이치에너지 대표 겸 포항공대 산업경영학과 겸직교수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팽팽하다.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가 지나는 길목이 흔들린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어김없이 경고등이 켜진다. 1970년대 오일쇼크 사태부터 반세기가 흘렀지만 여전히 '에너지 밸브'의 주도권은 외부에 있다.

재생에너지는 이 구조를 바꿀 유력한 카드로 거론된다. 물론 석유와 가스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원의 외부 의존도를 낮춘다는 점에서 에너지 안보의 새로운 축으로 주목받고 있다. 문제는 '밸브'가 자원에서 데이터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블랙록, 맥쿼리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한국의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지방의 발전소, 인허가 부지, 한전선로 접속 가능 부지 등이 그들의 포트폴리오로 편입된다. 자본은 국경이 없다지만 에너지는 다르다. 이것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다. 미래의 '유전(油田)'을 선점하려는 영토 경쟁이다.

우리는 이 흐름을 냉철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거대 자본이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발전소 설비가 아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선점하고자 하는 것은 변동성 높은 재생에너지를 제어하고 최적화하는 '운영 데이터'와 '플랫폼'이다.

재생에너지는 과거의 화력발전소와 구조적으로 다르다. 전국 곳곳에 흩어진 수만 개의 발전원이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이 복잡성을 통제하는 힘은 데이터에서 나온다. 누가 전기를 언제, 얼마만큼 생산하고 소비하는지를 예측하고 이를 연결하는 '알고리즘'은 곧 경쟁력이 된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쥐는 자가 전력망(Grid)을 지배한다. 구글과 애플은 모바일 운용체계(OS)로 스마트폰 생태계를 장악했다. 재생에너지 시장도 결국 '에너지 OS'를 가진 자가 모든 부가가치를 흡수하게 된다.

만약 국가 전력망의 운영 시스템 일부가 해외 자본에 의존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국은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나라다. 지난 세기, 우리는 에너지 자립을 이루지 못해 외부 변수에 경제가 휘청이는 위기를 겪었다. 과거에는 석유와 LNG가 없어 휘둘렸다면, 미래에는 데이터가 없어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태양과 바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리쬔다.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우리 땅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를 움직이는 두뇌가 외부에 있다면 진정한 의미의 에너지 안보는 요원해진다. 데이터 주권이 곧 에너지 주권인 시대다. 이것이 에이치에너지가 '인공지능(AI) 기반의 에너지 플랫폼' 구축에 집중하는 이유다.

에이치에너지는 전국에 분산된 지붕 태양광과 유휴 부지를 플랫폼으로 연결하고 있다. 단순히 전기를 모아 파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플랫폼을 통한 '표준화'다. 발전소의 설계부터 인허가, 운영, 정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흡수하고 우리 산업 환경에 맞는 최적의 운영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해야 하는 국내 제조 기업들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공장이 안정적인 재생에너지를 공급받으려면, 우리 산업 생태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플랫폼이 뒷받침돼야 한다. 외부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디지털 에너지 인프라'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자본과 협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협력은 우리가 중심을 잡고 있을 때 비로소 대등해진다. 하드웨어 투자는 유치하되, 소프트웨어(SW) 주도권은 놓지 않는 '영리한 전략'이 요구된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전력 산업은 이제 '건설업'이 아니라 '데이터 산업'이다. 송전탑을 몇 개 더 짓고 발전소를 확충하느냐보다, 운영 시스템을 얼마나 고도화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티끌 같은 분산 자원을 모아 태산을 만드는 기술, 그리고 그 데이터를 우리 손으로 지키고 활용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이것이 에너지 전환 시대에 대한민국이 가져야 할 진짜 '자원'이다.

함일한 에이치에너지 대표·포항공대 산업경영학과 겸직교수 contact@henergy.xy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