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스스로 움직이는 소프트 나선 로봇 개발

포스텍(POSTECH)은 김연수 신소재공학과 교수, 정태훈 박사 연구팀이 자연의 나선 구조를 모방해 작은 변형을 큰 움직임으로 증폭시키는 생체 모사 소프트 로봇을 개발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최근 국제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Advanced Material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덩굴식물이 지지대를 타고 오르는 모습을 자세히 보면 단순히 감겨 올라가는 게 아니다. 나선형으로 몸을 비틀면서 작은 힘으로도 높이 올라간다. 짚신벌레 같은 단세포 생물은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스프링처럼 몸을 순식간에 움츠리는데, 이것도 나선 구조 덕분이다. 나선형은 작은 움직임을 크고 빠른 움직임으로 바꿔주는 일종의 '자연이 설계한 증폭 장치'다.

왼쪽부터 김연수 교수와 정태훈 박사
왼쪽부터 김연수 교수와 정태훈 박사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원리를 로봇에 적용하고 싶었다. 인공 근육이나 소프트 로봇에 나선 구조를 넣으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었지만, 번번이 같은 벽에 막혔다. 서로 다른 소재를 복잡하게 이어 붙이거나 까다로운 제작 공정을 거쳐야 했고, 그렇게 만들어도 자연만큼 역동적인 움직임이 나오지 않았다.

연구팀은 찾은 해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여러 재료를 이어 붙이는 대신, 처음부터 나선형으로 굳히는 것이다. 유리 모세관 표면에 포토마스크를 나선형으로 감고, 내부에 자외선 흡수제를 넣은 뒤 빛으로 굳히는 '광중합' 방식을 적용했다. 그러자 빛이 안쪽과 바깥쪽에 다르게 닿으면서 하나의 소재 안에 농도 차이가 생기고, 이 차이가 자연스럽게 나선형 구조를 만들었다. 복잡한 조립 과정 없이 단일 소재만으로도 자연의 움직임 설계를 구현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선형 하이드로겔은 열, 빛, 산성 환경 등 다양한 자극에 반응해 수축한다. 특히, 열을 가했을 때 일반 구조보다 길이 방향 수축이 1.6배 더 크게 나타났다. 같은 힘을 주더라도 훨씬 더 멀리, 더 크게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이 원리를 이용해 끈을 따라 자벌레처럼 한 방향으로 기어가는 소프트 로봇을 실제로 제작하는 데도 성공했다.

나선형 하이드로겔 합성 공정 모식도
나선형 하이드로겔 합성 공정 모식도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외부 자극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기능까지 구현했다. 화학물질이 산화와 환원을 자동으로 반복하는 '벨루소프-자보틴스키 반응1)'을 결합해 전기나 배터리 없이도 주기적으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젤을 만들었다. 이 소재는 마치 심장이 뛰듯 스스로 감기고 풀리는 운동을 반복했으며, 기존 막대형 구조 대비 진동 폭은 4배, 수축 속도는 3.4배 빠른 성능을 보였다.

이번 연구는 단순한 소재 기술을 넘어, 자연의 기하학적 설계를 활용한 새로운 설계 원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체내를 이동하는 의료용 마이크로 로봇, 스스로 작동하는 인공 근육, 웨어러블 소프트 기기 등 다양한 산업과 일상 속 기술로 이어질 가능성이 기대된다. 작은 움직임을 크게 바꾸는 자연의 지혜가 미래 로봇 기술의 핵심 열쇠가 되고 있다.

제1저자인 정태훈 박사는 “자연의 나선 구조가 만드는 움직임 증폭 원리에 주목했고, 이를 자가진동 화학 반응과 결합해 단일 소재만으로도 스스로 크게 움직이는 시스템을 구현한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김연수 교수는 “전력이나 복잡한 제어 없이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차세대 마이크로 로봇과 인공근육 개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라며 연구의 의의를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 사업 및 행정안전부 재난안전부처협력 R&D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