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성장펀드 2차 메가프로젝트'는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미래 지형을 재편하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잘 드러난다. 바이오, 인공지능(AI), 디스플레이, 모빌리티, 에너지, 지역개발 등 6대 핵심 분야를 설정하고, 산업별로 성장을 가로막는 '병목 구간'에 자금을 집중 투입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통해 상업화 성공률을 높이고 대규모 설비 투자를 유도해 기술 자립과 지방 성장을 동시에 견인한다는 포석이다.
◇국가 생존 걸린 '산업 병목' 전방위 해소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차세대 바이오 분야의 지원 방식 변화다. 그간 국내 유망 바이오 기업들은 기초 연구와 임상 2상까지 성공하고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글로벌 임상 3상의 벽을 넘지 못해 공들인 기술을 해외로 헐값에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른바 '기술 유출의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다. 국민성장펀드는 상업화 직전 단계인 글로벌 임상 3상 기업에 직접투자와 대출을 집중해, 혁신 신약의 결실이 온전히 국내 산업 자산으로 남을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AI 분야는 '소버린 AI' 경쟁력 강화로 목표를 확장했다. 1차 프로젝트인 'K-엔비디아'가 AI 반도체(NPU) 설계라는 점 단위 투자였다면, 이번 2차 프로젝트는 선(線)과 면(面)의 투자다. 반도체 설계부터 데이터센터 구축,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나아가 응용 서비스까지 이어지는 'AI 전주기 밸류체인'을 구축한다. 이는 국가적 데이터 주권을 지키고, 글로벌 AI 패권 경쟁에서 한국만의 독자적 생태계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초격차 확보에 자금을 쏟는다. 프리미엄 OLED 시장은 스마트폰을 넘어 태블릿, 자동차 전장 등 활용 범위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국민성장펀드는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조 단위 규모의 대형 시설 투자를 뒷받침해, 한국이 글로벌 프리미엄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공고한 1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수행한다.
미래 모빌리티는 무인기(UAV)와 차세대 방위산업을 결합한 통합 경쟁력 강화에 주력한다. 무인기 동체뿐만 아니라 전자장비, 동력 체계, 제어 소프트웨어 등 핵심 부품의 국산화와 양산을 지원한다. 이는 모빌리티 산업이 이동 수단을 넘어 물류와 보안 시스템의 핵심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흐름을 선제적으로 공략하려는 의도다. 엔진, 배터리, 반도체 등 관련 산업 전반에 막대한 파급효과가 기대되는 영역이다.
지방 성장과 에너지 전환도 프로젝트의 핵심 축이다. 대규모 육상풍력과 태양광 발전 사업에 참여해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대전환을 가속한다. 여기서 생산된 전력은 지역에 구축될 AI 데이터 센터 등에 안정적으로 공급돼, 산업과 에너지가 공존하는 지역 자립 모델을 만든다.
특히 현대차 등이 대규모 투자안을 발표한 새만금 첨단벨트를 로봇, 수소, 재생에너지의 거점으로 육성한다. 직접투자와 인프라 투융자 등 다각적인 금융 지원을 통해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 산업의 지형을 지방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50조원+@ 지원

금융위원회는 국민경제자문회의 등과의 심도 있는 의견수렴을 거쳐 향후 5년간 50조원+@ 규모의 자금을 국민성장펀드의 직·간접 투자 및 대출을 통해 공급할 계획이다. 이는 첨단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투자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취지다.
우선 민관합동펀드(간접투자)를 통해 35조원을 조성한다. 민간 전문 운용사의 예리한 선구안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자금 공급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민간 투자가 미치지 못하는 공백을 정밀하게 메운다. 특히 투자 회수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M&A 및 코스닥 초기 상장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초장기 기술투자 및 지방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신규 자펀드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직접투자 부문에는 15조원을 투입해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위험 영역에 대규모 '인내자본'을 제공한다. 첨단 중소·혁신기업들이 성장 단계에서 겪는 투자 절벽을 해소할 수 있도록 맞춤형 스케일업 자금을 지원하고, 심사 과정에서 민간의 전문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등 심사 체계의 근본적 혁신을 추진해 고위험 프로젝트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방침이다.
아울러 저리 대출 프로그램을 가동해 중소기업의 펀드 활용 문턱을 대폭 낮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 단계부터 긴밀히 협력하는 '상생형 프로젝트'를 유도하고, 대기업 주도의 상생 프로그램을 활성화해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신속하고 실질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오는 2분기 중 민관합동펀드 운용사 선정 공고 및 선발 절차를 진행한다. 이어 하반기 자금 모집 과정을 거쳐 이르면 연말부터 산업 현장에 본격적인 자금 수혈을 시작할 예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직접투자와 저리 대출은 산업계의 상시적인 자금 수요에 맞춰 신속하게 집행될 것”이라며 “국민성장펀드의 정책 목표를 충실히 반영한 메가프로젝트를 주기적으로 발표하되, 프로젝트에 포함되지 않은 사업이라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필요한 자금을 적시에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박진혁 기자 s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