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주 듣는 말 가운데 가장 시대착오적으로 들리는 문장이 있다. “이거 네가 한 거 아니지? AI가 한 거지?”라는 질문이다. 겉으로는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중요한 전제가 숨어 있다. 인간의 창작은 '순수해야 하고', 도구의 개입은 '가치가 떨어진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이 전제는 산업과 기술의 발전사를 조금만 되짚어보면 쉽게 무너진다.
과거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화가들은 “기계가 그린 그림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사진은 예술을 대체하지 않았다. 오히려 회화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인상주의와 추상주의는 바로 그 틈에서 탄생했다. 또 다른 사례로 워드프로세서를 들 수 있다.
손으로 글을 쓰던 시대에서 컴퓨터로 글을 쓰는 시대로 넘어올 때도 비슷한 반응이 있었다. “타이핑으로 쓴 글은 정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금 이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구는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산성과 표현력을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해 왔다.
AI 역시 동일한 궤적 위에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관점'이다. AI를 도구로 보느냐, 아니면 인간을 대체하는 위협으로 보느냐에 따라 대응 방식은 완전히 달라진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의 대응은 매우 명확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생산성 도구에 AI를 통합하며 '코파일럿'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웠다.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과 실행을 보조하는 파트너로 정의한 것이다. 어도비(Adobe)역시 AI 기반 이미지 생성 기능을 도입하면서 “창작의 민주화”라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기존 디자이너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창작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방향으로 기술을 포지셔닝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기술의 본질은 중립적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산업의 구조와 개인의 경쟁력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AI를 '치팅'으로 보는 순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은 의심의 대상이 된다. 반대로 AI를 '확장된 사고 도구'로 정의하는 순간, 그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경쟁력을 갖게 된다. 같은 기술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강연 현장에서 종종 듣는 또 다른 말도 있다. “AI 이야기는 되도록 삼가해 주시죠. 직원들이 불안해합니다.” 이 말은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조직의 현재 상태를 드러내는 신호다. 변화 자체를 통제하려는 시도, 그리고 구성원의 불안을 '정보 차단'으로 해결하려는 접근이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운다.
유사한 사례는 이미 과거에 존재했다. 스마트교통카드가 도입되던 시기를 떠올려보자. 버스 안내원이라는 직업은 빠르게 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만약 그때 “기술 이야기를 하지 말자”고 해서 변화가 늦춰졌을까. 그렇지 않다. 변화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였다. 실제로 교통 시스템은 자동화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데이터 관리, 시스템 운영, 서비스 기획 등 새로운 직무가 생겨났다. 기술은 일자리를 없애는 동시에, 다른 형태의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AI 역시 동일하다. 단순 반복 업무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시에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맥락을 설계하는 능력', '결과를 해석하는 능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이는 이미 여러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예를 들어 매킨지앤컴퍼니(McKinsey & Company)의 분석에 따르면, AI 도입 이후 가장 빠르게 가치가 상승하는 직무는 단순 실행자가 아니라 '의사결정과 문제 정의를 담당하는 역할'이다. 즉, AI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AI에게 무엇을 시킬지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 경쟁력을 갖는다는 의미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긴다. “AI를 사용했는가”가 아니라 “AI를 어떻게 사용했는가”다. 동일한 도구를 사용해도 결과가 다른 이유는 여기에 있다. AI에게 단순히 답을 요청하는 사람과, 문제를 구조화하고 맥락을 설계한 뒤 결과를 검증하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성과를 만들어낸다. 전자는 도구에 의존하는 것이고, 후자는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가 마주한 상황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이미 와 있는 미래를 부정하거나 숨기려는 태도는 조직과 개인 모두에게 비용으로 돌아온다. 변화는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설계의 대상이다. AI를 금기시하는 조직은 단기적으로는 안정감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잃게 된다. 반대로 AI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기준과 역량을 설계하는 조직은 새로운 기회를 선점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과거의 기준으로 현재를 평가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도구로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 “이거 네가 한 거 아니지?”라는 질문은 이제 의미가 없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도구를 통해 무엇을 만들어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리고 그 질문을 조직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기업만이, 다가오는 시대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