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희 한국벤처투자(KVIC) 대표가 모태펀드 중심의 기존 역할에서 벗어나 민간 자금을 적극 유입하는 '벤처투자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본격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출자기관을 넘어 자금과 시장, 지역과 글로벌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대표는 28일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벤처투자는 단순한 출자기관이 아닌 자금과 시장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해야 한다”며 “연기금, 금융기관, 산업자본, 해외자본이 안정적으로 혁신투자시장에 유입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년을 '역할 재정의의 시기'로 규정했다. 모태펀드 20주년을 계기로 단순 출자를 넘어 자금 흐름을 연결하고 신규 투자재원을 끌어들이는 기능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제도 정비와 출자 기반 확대에 주력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성과도 이어졌다. 한국벤처투자는 지난해 2조2195억원을 출자해 4조4751억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했으며, 총 3조995억원의 투자를 집행했다. 시장 위축 국면에서도 벤처투자 흐름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특히 출자자 기반 다변화가 핵심 성과로 꼽힌다. 모태펀드와 연기금투자풀을 통해 무역보험기금과 공동 출자한 'LP 첫걸음펀드'를 조성하며 기관투자자 참여 기반을 넓혔다. 올해는 이를 'LP 성장펀드' 체계로 고도화해 다양한 출자자가 안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정책 기반도 강화했다. 모태펀드 정책포럼을 정례화하고 벤처투자연구센터를 통해 시장 지표와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국회와 정부에 대한 정책 설명 기능도 확대했다.
투자 방향은 딥테크와 국가전략산업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 대표는 “AI, 바이오, 콘텐츠, 에너지 등 'ABCDE'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며 “차세대 유니콘 프로젝트를 통해 초기부터 스케일업까지 이어지는 지원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 이후 기업 성장 지원 기능도 강화됐다. 조합 관리 체계를 개편해 운용사의 기업 성장 기여도를 평가에 반영하고, 초격차·라이콘·지역·글로벌 IR을 통해 투자자와 기업 간 접점을 확대했다. AI 반도체 기업 리벨리온과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등은 이러한 구조가 실제 성과로 이어진 대표 사례로 제시됐다.
글로벌 진출 지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펀드는 2026년 2월 기준 84개로 확대됐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카자흐스탄, 싱가포르 등과 협력 기반을 구축했다. 이 대표는 “중동 전쟁 와중에서도 영상 미팅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협력 체계를 마련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실리콘밸리에는 스타트업벤처캠퍼스(SVC)를 개소해 현지 투자와 네트워크 연계를 지원하고 있다. 재외동포 자본을 활용한 '동포펀드'와 한일 출자 기반의 제주스타트업펀드 조성도 추진 중이다.
지역 투자 확대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해 4000억원 규모의 지역 모펀드 4개를 조성한 데 이어, 올해는 4500억원 규모의 지역성장펀드 5개를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비수도권 중심의 투자·회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조직 혁신도 이어졌다. LP플랫폼팀과 벤처투자연구센터를 신설하고 글로벌본부와 지역본부 기능을 강화했다. AI혁신팀을 통해 출자 심사와 펀드 관리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하는 등 'AX 전환'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벤처투자는 향후 'Beyond'와 'Bridge'를 두 축으로 플랫폼 전략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출자에서 성과로, 국내에서 글로벌로,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재정 중심에서 민간 참여 확대로 확장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이 대표는 “지난 1년이 방향을 정립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년은 이를 성과로 증명하는 시기”라며 “한국벤처투자는 자금을 잇고 시장을 잇고 지역과 세계를 잇는 벤처투자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