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인복지관서 '인생회고 자서전 쓰기' 강좌 오픈

일흔살 여든살 어르신들의 삶을 책으로 출간
왕십리2동노인복지관, 쓰디쓴 인생살이 담담히 정리

서울 노인복지관서 '인생회고 자서전 쓰기' 강좌 오픈

서울 성동구 왕십리2동노인복지관(관장 김경주)은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개관과 함께 사회참여 인문강좌 중 '인생회고 자서전쓰기' 과목 수업이 시작됐다. 수강생은 70대에서 80대 어르신들. 놀랍게도 이분들은 지난해 3개월 동안 두 권의 자서전을 묶어 출간했고 올해 3개월간 또 한 권, 그러니까 모두 3권의 책을 출간했다.

첫 번째 책은 태어나서 청년기까지, 두 번째 책은 청년 이후 결혼, 부모 봉양, 자녀 결혼 등 노년에 이른 현재의 삶을 정리했다. 세 번째 책은 '감성 글쓰기' 편으로 시와 수필을 통해 유년에서 아들딸, 손주에 이르는 성장기를 함께 보낸 과정에서 터득한 느낌과 추억을 문학적으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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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이나 자서전은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뉴스메이커로서 언론에 등장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미화나 날조가 많아 또 하나의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글은 솔직담백할 때 설득력을 얻는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 그런 글쓰기를 기본으로 삼는 자서전은 그 사람의 삶의 품격과 문장의 정도에 따라 느낌과 감동의 차이가 있다.

어떤 글은 그 사람의 인생살이가 매우 진솔하고 진실한 인생길을 걸어왔기에 감동을 준다. 어떤 글은 생생하고 역동적 삶과 문장력으로 인하여 문학적 가치를 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직접적이고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면서 아픔의 찌꺼기를 말끔히 털어내고 덧난 생채기를 오려냈을 때 여생에 더 큰 여백의 공간이 확보된다. 그 통로가 치유의 과정이다. 복지관 글쓰기는 나를 치유하고 회고하며 정리하는 삶의 여정 중 한 방식이다.

80세의 한 어르신은 제주 해녀 출신. 할아버지 밑에서 엄하게 성장했고 단지 여성이라서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채 물질을 시작했다. “어릴 때는 물질이 서툴러 잡은 게 적어 귀가는 일이 두려웠다. 그때마다 갈매기는 내 옆에서 울어댔다.”라고 썼다.

올해 나이 79세로 경북 의성에서 육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는 어르신은 할머니 구박을 말없이 참으며 살아간 친정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글로 시작했다. 해마다 겨울 농한기가 오면 1년 한 번씩 어머니와 상봉했는데, “어머니는 오른쪽 호주머니엔 밤을, 왼쪽엔 곶감을 넣고 오셔서 만난 즉시 입안에 넣어주었다. 어린 나의 얼굴과 손을 감싸고 어루만져 주던 그 깊고 깊은 애정의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겹다.”라고 썼다.

옷장사, 꽃장사, 또다시 실직. 끝없는 터널은 또 이어지고 그렇게 대형 어학원을 차려 성공한 이야기와 앞으로의 희망을 담담하게 쓴 할머니 기록도 모든 이의 눈시울 붉히게 했다.

질곡의 삶을 살면서 늘 기대던 어머니가 이승을 떠났고 꿈결에 나타났다. 그 어머니가 “괜찮아 울지마”, “넌 아주, 잘하고 있어”... 눈물 흥건히 적신 소녀처럼 식어가던 그 가슴에 쓰러져 울부짖으며 60년간 끝없는 재촉과 청탁만 했던 딸의 잘못을 털어놓고 “고마웠다”라는 그이에게 절규로 보내던 마지막 인사. “안녕! 내 사랑! 나의 어머니! 잘 가세요, 사랑해요!”... 그렇게 일흔살 수강생은 어머니에게 슬픈 찬가를 보냈다.

서울 노인복지관서 '인생회고 자서전 쓰기' 강좌 오픈

시와 수필을 통해 은유적으로 문학성을 발휘하는 글들도 있다. 아나운서 출신인 어르신은 콘택트렌즈가 빠져 눈이 흐릿하고 어지러운 상태에서 첫 생방송을 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현재는 그때 못다 한 그림 그리기와 글짓기로 자식들에게 못 해준 사람을 손주들에게 다하려고 한다. 그래서 쓴 시가 '나의보석'이다.

“네 아이 키울 적엔/사는게 바빠/사랑하는 법을 몰라/그저 마음 하나로만 길러냈네//이제 세송이 꽃 같은 손주들/내게 보석으로 다가와/맑게 웃으니/어떻게 보듬어야 빛이 날까//서툴렀던 어제의 내가/자꾸만 미안해지네//아 내 남은 숨결 모두 모아/너희 가는 길 환히 비추고 싶구나/목숨보다 귀한/눈부신 나의 보석들아” - 윤혜숙 '나의 보석' 전문

시한부 암 선고를 받고 온 가족과 함께 해외로 떠났다가 뜨거운 가족애 그리고 자연과 낯선 땅에서 만난 다른 나라 이웃들을 통해 휴머니즘과 여백이 있는 삶을 만나 건강을 회복하고 귀국해 복지관 글쓰기 수업을 통해 나를 치유하고 삶의 뒤안길을 관조하는 계기로 삼기도 했다. 숱한 사연을 포토뉴스로 처리해 함축된 포토스토리를 통해 인생길을 반추하는 방식이다.

이 수업을 지도하는 박상건 시인은 섬 전문가이자 언론학박사이며 22년 동안 대학에서 글쓰기를 지도해온 교수 출신 언론사 사장으로서 20권의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수업방식 등을 묻자 그는 “저는 글쓰기 길만 일러드릴 뿐, 되레 인생 선배님들 삶을 경청하며 저 역시 배우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박은석 기자 gikpri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