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도 공공기관이 기업의 친환경 전력 사용 실적을 공식 확인하는 시대가 열렸다. 전력거래소가 삼성전자와 손잡고 국내 반도체 공장의 친환경 전력(Carbon-Free Electricity·CFE) 사용 실적을 확인하는 국내 첫 인증체계 구축에 착수하면서다. 글로벌 빅테크를 중심으로 공급망 전반에서 무탄소 전력 사용 증빙 요구가 확산하는 가운데, 국내 수출기업의 탄소 경쟁력을 높이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력거래소는 26일 삼성전자와 '친환경 전력(CFE) 사용실적 확인 및 에너지 분야 업무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은 삼성전자 국내 반도체 공장을 대상으로 친환경 전력 사용 비중을 공공기관이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국내 첫 사례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RE100 등 글로벌 탄소 규범에 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반도체 산업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원자력을 포함한 무탄소 전력(CFE) 사용 여부를 확인하려는 글로벌 고객사의 요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주요 해외 거래처로부터 국내 반도체 공장의 친환경 전력 사용 실적에 대한 객관적인 증빙을 지속적으로 요청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시범사업에서 전력거래소는 전력시장 운영 과정에서 축적한 거래 데이터를 활용한다. 원자력과 태양광, 풍력 등 에너지원별 전력거래량을 분석해 삼성전자의 친환경 전력 사용 실적을 확인하고 이를 제공할 예정이다. 전력거래소는 이번 결과를 토대로 인증체계의 신뢰성과 활용성을 높이는 한편 참여 기업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협약은 단순한 양해각서 체결을 넘어 국내 산업계에 CFE 인증체계를 처음 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국내에는 기업이 실제 얼마나 친환경 전력을 사용했는지 공신력 있게 확인해 주는 체계가 사실상 없었다. 앞으로는 전력거래소가 보유한 전력시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객관적인 사용 실적을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해외 고객사에 제출하는 증빙의 신뢰성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반도체를 시작으로 AI 데이터센터와 배터리, 철강, 석유화학 등 전력 다소비 수출 산업으로 제도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공급망 전반의 탄소정보 공개 요구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인프라 역할을 할 것이라는 평가다.
에너지 정책 측면에서도 의미가 적지 않다. CFE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원자력까지 포함하는 무탄소 전력을 인정하는 개념이다. 원전 비중이 높은 국내 전력 구조를 고려하면 RE100보다 현실적인 산업 경쟁력 확보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시범 인증은 국내에서도 CFE 활용이 본격화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김성진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이번 협약은 해외시장에서 요구되는 친환경 전력 사용 정보를 국내 기업이 보다 신뢰성 있게 확인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첫걸음”이라며 “전력계통과 시장 운영기관으로서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관련 인증체계를 구축해 우리 기업의 글로벌 수출 경쟁력 강화에 적극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